남로당은 북한의 남침을 바라지 않았다?
남로당 지하당 총책까지 맡다가 전쟁 후 북한으로 가서 남로당파 숙청을 피해 소련을 거쳐 일본에 망명한 박갑동 씨. 그는 흥미로운 주장 하나를 합니다.
자신이 선전까지 한 남로당 총책이라 아는데, 남로당은 북한의 남침을 바라지 않았다는 겁니다.
남로당의 정책은 남한이 내부로부터 썩어들어가는 걸 노려 이 불만을 폭발시켜 남한을 자연스레 적화시키는 거였는데, 6.25 남침으로 이 전략의 대대적 수정이 불가피했다는 겁니다.
그가 작성에 참여했다는 남로당의 극비 보고서를 여기 옮겨와 봅니다.

1. 작년 6월 말 미군은 남조선에서 철수하였다. 이것은 남조선 인민의 정치적 투쟁의 승리다. 동시에 남조선 인민의 단결된 정치적 투쟁이 미제를 남조선으로부터 완전히 구축할 가능성도 보였다.
2. 리승만 정권은 인민대중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있고 또한 내부의 분렬 정권은 총선거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붕괴 직전에 놓여 있다. 한국독립당에 의해 금년 5월로 예정되어 있는 총선거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총선거를 거부하면 이 정권은 미제와 그의 거수기인 UN한국위원단이 선전하는 것처럼 명목상으로도 "립헌민주정권'이 아님을 근본부터 폭로하는 것이다. 또한 총선거를 실시하더라도 리승만 도당은 국회내에서 소수파로 전락하여 정권을 유지하기가 곤란해진다.
3. 이러한 정세로 나간다면 차기 대통령 선거에 리승만이 대통령으로 재선될 수는 없다.
4. 앞으로 2년에서 4년 사이에 평화적 정치투쟁에 의해 미제의 괴뢰인 리승만 도당을 쫓아내고 남조선인민 자신의 손에 의해 언론·출판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를 조직할 가능성을 예견할 수가 있다.
5. 리승만 도당이 위기에 처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가혹한 인민학살정책을 가지고 우리 당을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 당은 작년 가을부터 금년 초에 걸쳐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현상으로서 남조선인민의 력량은 무한하며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혁명적 양양기를 맞이할 것을 확신한다.
- 통일방책에 대하여
1. 우리 당의 기본노선인 평화통일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 인민대중의 신임을 얻는 정당은 그 슬로건과 실천이 어디까지나 일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2. 인민군에 의한 무력통일은 절대 반대한다. 이것은 극좌모험주의며 외국군의 간섭을 가져 올 위험이 있다. 또한 남북의 지역적 항쟁의 양상을 나타낼 위험성이 있어 조국의 운명을 위험하게 할 것이다.
3. 우리 당이 남한인민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 미제와 리승만 도당의 '북벌' 을 좌절시킬 수가 있다. 리승만 도당에 의한 '역통일'은 있을 수 없다.
4. 미제의 군사적 간섭을 막는 평화적 방법, 즉 총선거라는 수단에 의해 리승만도당을 소수파로 전락시키고 정권에서 몰아내고 남조선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여 남북의 정당·사회단체의 혐의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상책으로 한다.
5. 리승만 정권이 더욱더 추악한 집권을 계속하고 인민학살정책을 감히 계속한다면 로동자의 총파업을 선두로 해서 로·농·병의 동맹을 중핵으로 하여 남조선인민의 봉기에 의해 리승만 정권을 타도하는 방책을 취한다.
6. 만약 이 경우 남조선인민의 정치적 투쟁에 한번 철수한 미군이 다시 불법적으로 개입한다면 남조선인민의 이름으로 전세계의 평화와 자유와 독립을 사랑하는 인민대중과 북조선의 동포에게 원조를 청한다. 그러나 이 외부로부터의 원조를 요청하는 것은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남조선노동당 지하당은 될 수 있으면 평화적으로 그리하여 남한인민 자신의 힘에 의해 자기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고 박갑동은 주장합니다. 북한군대의 무력에 편승하여 자기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애초이 될 수 없는 것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 인민군 건군의 기본목적에 위반하여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극좌 모험주의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며 반혁명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남조선노동당 지하지도부는 판단하였던 겁니다.
위와 같은 평양의 박헌영에게 보내는 보고서 초안을 가지고 50년 3월 27일 밤 입안집필자인 정태식과 박감동 두 사람은 직접 남조선로동당의 북한 연락책 김삼룡을 만나러 연락 지점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김삼룡은 하필이면 그날 우리 경찰에 포위되어 집을 탈출했고, 다음 날 체포당합니다. 또한 남파간첩의 양대산맥이었던 이주하도 일주일 뒤에 체포당하고요.
결국 이 보고서는 김일성은 커녕 박헌영에게도 전달되지 못하고 그냥 내부 회의록 수준에서 끝났으나, 이들도 바로 3달 뒤 전쟁이 일어날지는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이 주장대로라면 박헌영의 '20만 남로당원 봉기' 는 애초에 일어날 수가 없었죠. 그 남로당원도 모를 정도로 전쟁준비는 너무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었으니요.
출처: 박갑동 지음, 구윤서 옮김, '한국전쟁과 김일성', 바람과물결, 1990.
[출처] 남로당은 북한의 남침을 바라지 않았다?|작성자 무수천
'♣신비코너♣ > 김광영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감자꽃 시인 권태응 선생 (0) | 2025.10.17 |
|---|---|
| 민족의 대명절 추석 한가위 즐거운 명절 되세요 (0) | 2025.10.03 |
| 김구와 이승만을 제친 정치인✨ 모두의 표적이 된 몽양 여운형 (0) | 2025.09.13 |
| 목숨 걸고 나라 지켰는데…조국에 학살 당한 독립운동가들 [광복80주년] ③ (0) | 2025.08.14 |
| 독립운동에 앞장섰는데 국가폭행에 희생 (2) | 2025.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