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전통시장의 변천사
◉충주전통시장의 실상과 현실을 소개한다.

옛 어른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해 본다면 충주지역에는 인구의 집중도에 따라 도시가 형성됐고 사람들의 삶 속에는 크고 작은 5일장이 존재했다.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의 중반만 하더라도 충주는 전국 제2의 인구가 집중했던 도시로서 거리에 따라 각 지역에는 5일장이 존재 했으며 당시 가장 명성이 있고 알려진 5일장은 충주장과 엄정의 내창장이 있었다. 5일장은 민중의 상거래를 했던 장터로서 충주장은 충북, 경북, 경기의 일부지역민들이 활용했던 규모가 큰 장 이었고 내창장은 북부지역의 인근지역인 제천, 단양, 강원도의 원주, 경기도 안성등 지역에서 내창장을 이용했다 한다. 당시에 충주장의 활용도가 높았던 것은 충주에는 충청감영이 있는 큰 도시이었고 엄정 내창장의 활용도가 높았던 것은 당시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물류를 이동 했던 교통수단이 뗏목을 이용한 수로이었는데 엄정의 목계나루가 큰 항구의 교역역할을 했기 때문 이었다.
충주자유시장은 옛날 충주읍성이 존재하던 시절, 북문이 있던 북문 거리에 형성되어온 5일장이 서던 곳이기도 한데 당시의 자유시장은 활력이 넘치는 큰 시장 이었다. 당시 충주의 경제는 자유시장에서 충당한다는 설이 있을 정도 이었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정쟁 전, 후의 자유시장에서는 의류, 주단, 포목을 취급하는 상점과 식품, 잡화, 문구, 철물, 건축재료, 주류, 제과, 식당과 과일, 채소, 고추, 마늘, 쌀을 판매하는 농산물상점 등이 함께 존재하여 말 그대로 도, 소매를 관장했던 만물시장이었다. [참조]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충주 자유시장의 변천사
〇충주자유시장은 옛날의 5일장에서 발전해 도시의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충주시 충인동과 충의동 지역에 정착된 시장이다.
〇충주자유시장은 구 중앙파출소를 기점으로 시작되는데, 이곳은 과거 충주읍성의 북문이 있던 곳으로 ‘북문거리’로 불리던 곳이다. 예전의 장이 성문 밖을 중심으로 열렸던 것을 생각하면 이곳은 충주읍성이 있던 지난 시절부터 성시를 이루던 곳으로 보인다. 1997년 3월 충주자유시장번영회가 조직되었다. 충주자유시장은 2005년 6월 21일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등록된 인정시장이다.
〇2004년부터 아케이드 설치를 시작으로 주차장 시설 확대, 고객 편의 도모를 위한 쇼핑카드 마련 등 매년 재래시장활성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〇충주자유시장의 자세한 역사는 정식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옛 우리나라의 도시형성을 보면 어느 도시이던 함께 존재했던 것이 5일장이자 전통시장 이었다.
충주 전통시장의 변천사를 알려면 먼저 충주의 역사를 돌아봐야 시장의 역사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시장의 본산은 5일장이고 옛 부터 사람들이 운집한 곳이면 어디서 던 5일에 한 번씩 상거래가 형성되었는데 바로 5일장의 근원 이었다 생각한다. 또한 5일장이 서는 지역엔 상가가 형성됐으며 곧 전통시장의 원천이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충주의 5일장역사를 찾아보려면 먼저 충주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충주의 역사가 곧 충주5일장의 역사요 전통시장의 명맥이기 때문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〇1970년말 무학시장이 등장했다. 1
충주무학시장의 역사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충주자유시장은 충주의 단일시장으로 상거래가 매우 활발했던 전통시장이었다.
문제는 1979년 충의동 일부지역에 현대상가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충주시는 충의동 허름한 주택가를 정리하여 상가아파트를 건설하여 상가부흥을 계획하였고 상가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점포 사전입주를 시도 하였으나 당시는 워낙 민생고에 시달리던 시기 인지라 입주자가 없어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노였다.
충주시는 상가점포의 입주가 안 되는 것은 충인동 자유시장에서 5일장이 성행하여 인파가 충인동에 머물기 때문이라 판단, 충주시는 충인동에서 성행하던 5일 노점장을 경찰을 동원,단속하여 충의동 현대상가 방면으로 이동을 시키기에 이른다.
시의 계획은 노점상이 옮겨가면 현대상가의 입주도 가능해 질것으로 생각 했으나 현대점포상가의 입주가 안 되는 것은 노점상이 없어서가 아니고 노점상들의 형편이 워낙 어려워서 입주할 능력이 되지 못 했기 때문이었기 때문 이었기에 충주시의 계획은 무산되었고 자유시장에서 노점단속으로 밀려난 노점상들은 현대상가 점포를 지나서 무학다리를 넘어 봉방동 (현재무학시장) 방면으로 넘어가 노점자리를 형성하기에 이룬다.
노점이 이곳에서 실행되니 고객들은 장을 찾아 이곳으로 몰렸고 장이 형성되니 이곳주민들은 주택을 상가로 변형시켜 점포를 개설하니 바로 무학시장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충주시 충인동 소재 원예협동조합 공터와 무학다리 건너지역에서 무변별한 노점상이 활성화되자 충주시와 충주경찰서는 합동으로 무허가 노점상을 강력하게 단속하였다.
이에 생계에 위협을 느낀 노점 상인들은 충주시를 항의 방문하는 등 심하게 반발했고 충주시는 노점 상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1978년말 현재의 충주무학시장 터에 72칸의 점포를 열고 영업을 개시하도록 허가하였고 점포가 늘어나자 충주무학시장번영회가 조직되었다.
백과사전에는 충주자유시장과 충주공설시장의 팽창에 의해 자연스럽게 시장으로서의 기능을 갖춰가면서 시발점이 됐다고 기록돼 있으나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고 충주시의 정책착오로 노점을 보던 노점상들이 무학시장으로 옮겨 감으로 개설된 시장이다.
충주공설시장의 변천사
〇1960년대는 충주공설시장이 정부의 시장 정책의 일환으로 하천 부지에 슬레이트 가건물을 건립하여 영세 상인들의 생계 대책 차원에서 1964년 12월 30일 개설되었다.
충청북도 충주시(忠州市) 충의동(忠義洞)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1964년에 문을 열었으며 충주시(忠州市)의 중심이 되는 위치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영세 상인을 위한 정부의 시장 정책 일환으로 1964년 12월 30일에 개설되었다. 부지 면적 1,612㎡이며 건축연면적 3,989㎡, 매장 면적은 3,973㎡로 140여개의 점포가 있다.
순대골목은 무학시장, 자유시장과 연결된 부분에 설립된 시장으로 생필품과 함께 주로 닭고기·순대·분식·채소·생선 등 식품류를 취급하고 있다.
〇2000년대 들어 대형할인점의 진출로 장세가 위축되고 오래된 건물이 사고 위험성이 있어 충주시에서 2007년에 20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2층 시멘트벽돌 건물로 개보수하고 현대화 시설을 마련하였다. 충주천(忠州川)과 교현천(校峴川) 변에 자리잡고 있어 노점상과 어우러진 먹거리 중심의 시장으로 유명하며 특히 자유시장과 무학시장과의 사이에 들어선 순대국밥 전문상가가 널리 알려져 있다.
〇2020년 공설시장은 자유시장으로 합류하였다.
〇2024년 5월 충주시의 방침에 따라 충주천변 대수정교∼현대교 235m 구간에 대해 시설 현대화사업을 추진 총 3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 노후화로 안전 우려가 제기된 공설시장 건물과 무허가 상가를 모두 철거하고 꽃과 가로수로 관광거리를 조성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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