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금봉산(남산)에 위치한 충주산성
충주산성(아래)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 산56-1과 직동산 24-1 및 목벌동 산54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19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조선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를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이 충주산성< 忠州山城 >은 전설< 傳說 >에 의하면 삼한시대< 三韓時代 >에 마고선녀< 麻姑仙女 >가 7일 만에 축성< 築城 >하였다 하여 일명 마고성< 麻姑城 >이라고도 하며, 금봉산< 錦鳳山 > 즉 남산< 南山 >에 소재하여 남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석축산성< 石築山城 >으로 매우 험준한 지세< 地勢 >를 이용하여 구축된 요새이고 성내에서 삼국시대< 三國時代 > 이래로 산성으로서 이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성의 주위는 약 1.2km이나 거의 무너지고 잔존부분은 약 300m 정도이며 성의 높이는 약 5∼6m 정도이다.
충주남산(금봉산)에서 바라본 충주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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