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신비 진천 ‘농다리’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 흔히 ‘살아서는 진천에 머물고, 죽어서 용인에 묻힌다’고 풀이한다. 그만큼 진천이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얘기다. 단순한 모양새의 원시교량이 천년 세월을 끄떡없이 버틴 것도 이 때문이라면 억지일까.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 세금천을 가로지르는 ‘농다리’는 고려 개국 초기에 놓인 것.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농다리’라는 입간판에 한 번쯤 눈길을 줬을 법한 다리다. 천년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다리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어 ‘아주 오래된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 흥미롭다.
태양이 작열하는 이즈음 유유히 흐르는 세금천에는 아이들의 물장구소리와 웃음소리가 넘쳐나 농다리의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다리인 농다리는 길이 93.6m, 너비 3.6m, 두께 1.2m, 교각 폭 80㎝. 건너편 산정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지네 모양이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튕기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형상이 볼수록 신비롭다.
다리는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삶을 엮어가는 수단. 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통로로 오래된 다리일수록 얽힌 사연도 넘쳐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천년의 이야기를 침묵한 채 사람의 발길을 잇고 있는 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딱히 없다. 전설 같은 이야기만 넘쳐나 신비함을 더해준다.
이 때문에 농다리가 처음 세워진 때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고려 개국공신인 임희장군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고, 고려 고종 때 무인 임연이 개·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 때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이곳에서 고구려와의 격전 후 승리를 기념해 다리를 놓았다는 설도 있다.
수양버들처럼 유연한 몸매와 교각의 독특한 돌 배치는 백곡천의 물까지 합수해 내려오는 세금천의 만만찮은 물살을 견디기 위한 건축공법인 셈.
진천군청 문화관광해설사 김성규씨는 “농다리의 ‘농’자는 농구의 ‘농’자와 같은 뜻으로 바스켓을 줄을 엮어 만들 듯 돌을 엮어 만든 다리”라며 “이같은 선인들의 지혜 덕에 다리는 천년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돌다리에 담긴 동양철학이다. 교각부터 상판석까지 다리 전체는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는 자석배음양, 즉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이라는 고서의 기록에 따른 것.
또 현재 24개만 남아 있는 교각은 당초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숙(宿)을 응용했고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물이 넘어가게 만든 수월교라는 점에서 옛 선인들의 지혜에 그저 탄복할 따름이다.
징검다리와 형교의 중간 형태인 농다리는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리 일부가 소실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5칸이 떨어져 나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고 시에도 3칸이 떨어졌다고 한다.
마을에서 농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그 옛날 풍류가 느껴지는 정자를 세웠고 그 뒤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산책로는 서낭당을 거쳐 초평저수로 이어지는 데 길이 여기까지다. ‘미호저수지’로도 불리는 초평저수지는 미호천 상류를 막아 축조한 것으로 나무데크에서 바라본 풍광이 그림 같다.
마을사람들은 이 지역의 빼어난 경치를 한데 묶어 ‘상산팔경(常山八景)’이라 부른다. 농다리 위에 눈이 쌓일 때 모습을 일컫는 ‘농암모설(籠巖暮雪)’도 그중 하나.
진천군은 현재 농다리 주변에 10억원을 들여 산책로와 야생초 화원, 암석원, 휴게소, 정자 등을 만들 예정이다.
건축기법과 양식이 독특해 더욱 흥미로운 농다리는 어쩌면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신비함으로 외지인을 끌어들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 김유신장군 생가 보고 ‘생거진천 쌀’ 밥맛 보고 -
▲주변 볼거리: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장군이 진천에서 태어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진천에는 김유신 생가는 물론 탯줄을 잘라 관아 뒤 길상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 만든 태실이 남아 있다. 이외에 정송강사, 송강 정철 묘&신도비, 이상설 생가, 용화사 석불입상, 길상사, 연곡리석비, 종박물관, 보탑사, 두타산, 백곡저수지, 역사테마공원, 왜가리번식지, 베티성지 등이 있다.
▲특산품&맛집:생거진천쌀, 관상어, 장미, 덕산 꿀수박, 천마, 황토 우렁이 등/‘진천생거 화랑밥상’이 유명하다. 기본메뉴 3종(7첩, 9첩, 12첩 밥상)은 생거진천쌀을 연계한 지역특성을 살린 요리로 전통과 현대의 맛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군지정음식점으로 충청회관(043-532-9996), 예원한정식(043-534-6388), 한천마당(043-536-5000) 등에서 즐길 수 있다. 초평저수지의 붕어찜도 별미. 저수지 주변 화산리 ‘붕어 마을’에는 송애집(043-532-6228), 고향집(043-532-6448) 등 10여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축제:‘제8회 생거진천 농다리 축제’가 8월22~24일까지 3일간 진천군 문백면 농다리 일원에서 열린다.
▲숙박:농다리 인근에는 숙박할 곳이 없어 진천 읍내의 모텔을 이용해야 한다. 생거진천 화랑촌(016-466-9323), 안골관광농원(043-532-0405), 별빛고운언덕(043-536-6114), 해피하우스(011-660-6943) 등
▲문의:진천군청 문화체육과 관광담당 (043)539-33621~4
굴티마을의 명소 ‘농다리’ 전경
수많은 설화와 전설,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천년의 숨결을 이어온 농다리(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는 진천읍에서 남동쪽으로 6㎞ 거리. 진천 읍내를 관통하는 백사천과 이월면을 적시는 덕산 한천이 합류해 흐르는 세금천에 놓여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이즈음 유유히 흐르는 세금천에는 아이들의 물장구소리와 웃음소리가 넘쳐나 농다리의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다리인 농다리는 길이 93.6m, 너비 3.6m, 두께 1.2m, 교각 폭 80㎝. 건너편 산정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지네 모양이다.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튕기며 물살을 가로지르는 형상이 볼수록 신비롭다.
다리는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삶을 엮어가는 수단. 또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통로로 오래된 다리일수록 얽힌 사연도 넘쳐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천년의 이야기를 침묵한 채 사람의 발길을 잇고 있는 농다리는 조성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사료가 딱히 없다. 전설 같은 이야기만 넘쳐나 신비함을 더해준다.
이 때문에 농다리가 처음 세워진 때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고려 개국공신인 임희장군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고, 고려 고종 때 무인 임연이 개·보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신라 때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이 이곳에서 고구려와의 격전 후 승리를 기념해 다리를 놓았다는 설도 있다.
수양버들처럼 유연한 몸매와 교각의 독특한 돌 배치는 백곡천의 물까지 합수해 내려오는 세금천의 만만찮은 물살을 견디기 위한 건축공법인 셈.
진천군청 문화관광해설사 김성규씨는 “농다리의 ‘농’자는 농구의 ‘농’자와 같은 뜻으로 바스켓을 줄을 엮어 만들 듯 돌을 엮어 만든 다리”라며 “이같은 선인들의 지혜 덕에 다리는 천년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 암숫돌 한쌍씩 28칸짜리 다리로, 길이만 하여도 대략 100m, 동양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다리라고 하네요.
붉은 빛 도는 무늬돌을 물고기 비늘모양으로 다듬지 않은 채 쌓아올린 다리라니, 어떻게 이 다리를 쌓아올렸을지....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돌다리에 담긴 동양철학이다. 교각부터 상판석까지 다리 전체는 사력암질의 붉은색 돌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이는 자석배음양, 즉 음양의 기운을 고루 갖춘 돌이라는 고서의 기록에 따른 것.
또 현재 24개만 남아 있는 교각은 당초 하늘의 기본 별자리인 28숙(宿)을 응용했고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물이 넘어가게 만든 수월교라는 점에서 옛 선인들의 지혜에 그저 탄복할 따름이다.
징검다리와 형교의 중간 형태인 농다리는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닥치면 다리 일부가 소실된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5칸이 떨어져 나갔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고 시에도 3칸이 떨어졌다고 한다.
마을에서 농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그 옛날 풍류가 느껴지는 정자를 세웠고 그 뒤로 산책로를 만들었다. 산책로는 서낭당을 거쳐 초평저수로 이어지는 데 길이 여기까지다. ‘미호저수지’로도 불리는 초평저수지는 미호천 상류를 막아 축조한 것으로 나무데크에서 바라본 풍광이 그림 같다.
마을사람들은 이 지역의 빼어난 경치를 한데 묶어 ‘상산팔경(常山八景)’이라 부른다. 농다리 위에 눈이 쌓일 때 모습을 일컫는 ‘농암모설(籠巖暮雪)’도 그중 하나.
마을의 또 다른 명소는 소습천. 그 옛날 안질을 앓던 세종대왕이 초정리로 향하던 중 마셨다는 소습천은 굴티마을의 ‘품(品)’자형 바위틈에서 솟아난다. 안질, 풍, 피부병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임금이 마셨다고 해서 ‘어수천(御水泉) 약수’로 불린다.
진천군은 현재 농다리 주변에 10억원을 들여 산책로와 야생초 화원, 암석원, 휴게소, 정자 등을 만들 예정이다.
건축기법과 양식이 독특해 더욱 흥미로운 농다리는 어쩌면 자신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신비함으로 외지인을 끌어들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 김유신장군 생가 보고 ‘생거진천 쌀’ 밥맛 보고 -
△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 하는데 농다리는 전혀 그럴필요 없이 튼튼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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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서울→중부고속도로 진천IC 좌회전→21번 국도 진천읍→신성사거리 좌회전 증평방향→지석마을 앞에서 우회전→농다리
▲주변 볼거리: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장군이 진천에서 태어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진천에는 김유신 생가는 물론 탯줄을 잘라 관아 뒤 길상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 만든 태실이 남아 있다. 이외에 정송강사, 송강 정철 묘&신도비, 이상설 생가, 용화사 석불입상, 길상사, 연곡리석비, 종박물관, 보탑사, 두타산, 백곡저수지, 역사테마공원, 왜가리번식지, 베티성지 등이 있다.
▲특산품&맛집:생거진천쌀, 관상어, 장미, 덕산 꿀수박, 천마, 황토 우렁이 등/‘진천생거 화랑밥상’이 유명하다. 기본메뉴 3종(7첩, 9첩, 12첩 밥상)은 생거진천쌀을 연계한 지역특성을 살린 요리로 전통과 현대의 맛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군지정음식점으로 충청회관(043-532-9996), 예원한정식(043-534-6388), 한천마당(043-536-5000) 등에서 즐길 수 있다. 초평저수지의 붕어찜도 별미. 저수지 주변 화산리 ‘붕어 마을’에는 송애집(043-532-6228), 고향집(043-532-6448) 등 10여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축제:‘제8회 생거진천 농다리 축제’가 8월22~24일까지 3일간 진천군 문백면 농다리 일원에서 열린다.
▲숙박:농다리 인근에는 숙박할 곳이 없어 진천 읍내의 모텔을 이용해야 한다. 생거진천 화랑촌(016-466-9323), 안골관광농원(043-532-0405), 별빛고운언덕(043-536-6114), 해피하우스(011-660-6943) 등
▲문의:진천군청 문화체육과 관광담당 (043)539-33621~4
진천군 농다리의 전설
농다리는 고려 고종때의 권신, 임연장군이 놓았다는 돌다리로 규모도 크고 축조술도 특이하다.
임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어느 몹시 추운 겨울날 세금천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 하자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으니 여인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입니다"하니 장군은 여인의 효성이 지극함과 그 정경이 딱하여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고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하루 아침에 다리를 놓아 부인이 무사히 건너도록 하였다 한다.
그 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라 전해지고 있다.
또다른 전설을 보면 나라안에 변고가 일어날 때는 이 다리가 몇일을 두고 운다고 하는데 한일합방 당시와 6.25동란 당시에도 이 다리가 몇일동안 울었기 때문에 부락민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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