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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직지사 대웅전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0. 12. 20. 12:51

김천 직지사 대웅전

 

김천 직지사대웅전」보물 지정

 

 

 

김천 직지사 대웅전 보물 지정봉암사 극락전, 성주향교 대성전·명륜당도 문화재청은 직지사 대웅전, 봉암사 극락전, 성주향교 대성전·명륜당 등 3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3일 밝혔다.

경북 김천시 대항면에 있는 직지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인조 27년(1649)에 다시 지었다. 이후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쳐 현재의 대웅전은 영조 11년(1735)에 중건됐다. 대웅전은 아름다운 벽화가 건물 안과 밖에 잘 보존돼 있는 데다 건물 자체도 조선후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나타내 이번에 보물 1576호로 지정됐다.

봉암사 극락전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고찰. 여러 차례 화재로 현재 건물은 조선후기 때 재건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극락전은 외관이 독특하고 건축기법도 18세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물 1574호가 됐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성주향교의 대성전은 향교 건물로는 드물게 외관이 장대하고 화려한 17세기 초 다포식(多包式) 건축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명륜당은 건물 구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함께 보물 1575호로 지정됐다.

보물 1576호(김천 직지사 대웅전)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가야 권역 답사를 가는 중에 추풍령 휴게소 부근에서 승용차에 문제가 있어서 수리를 하고나서 휴게소에서 바로 직지사로 나가는 길이 있어서 직지사를 둘러 보았습니다.

▲ 직지사 입구 전경

▲ 비석군(신도비/선정비/불망비)

▲ 사적비 외부 전경

▲ 사적비 전경

▲ 사적비 받침돌의 머리 모습이 조금은 특이합니다.

▲ 사적비 좌우로 서 있는 선사비

▲ 일주문

▲ 대양문

▲ 만덕전

▲ 금강문과 내부 좌우 벽면에 그려진 그림

▲ 천왕문 좌우로 그려진 용의 모습

▲ 천왕문 내부의 사천왕상과 천왕문 입구 위에 새겨진 그림

▲ 만세루

▲ 대웅전

직지사 대웅전 앞 삼층석탑(보물 606호)

▲ 대웅전 앞 삼층석탑 중에 좌측 삼층석탑 전경

▲ 대웅전 앞 삼층석탑 중에 우측 삼층석탑 전경

직지사 대웅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2기의 석탑으로, 원래 경북 문경의 도천사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두 탑 모두 각 부분의 양식이 같아서 1단의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여러 장의 넓적한 돌로 짜여진 기단은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을 지나면 석탑 좌우 바닥에 있는 석조

얇고 평평한 지붕돌의 밑면 받침으로 1·2층은 5단, 3층은 4단을 두었고, 수평을 이루던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 올려진 거대한 모습의 머리장식은 1976년 탑을 옮겨 세울 때 새로 만들어 장식해 놓은 것이다. 탑신의 1층 몸돌 높이가 지나치게 높긴 하나,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기단이 1단이고, 지붕돌의 들린 정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 대웅전 앞의 석등과 좌우로 서 있는 석조 기둥

▲ 대웅전 앞의 계단 전경

직지사는 418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절의 이름은 아도화상이 절터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는 뜻에서 직지사라 부른다. 직지사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어 그 모습이 화려하다. 내부에는 원래 석가모니불상만을 모시나 이곳에는 약사·석가·아미타불의 세 불상을 모시고 있다.

▲ 대웅전에서 바라 본 경내 전경

또한 영조 20년(1744)에 만들어진 불화도 있는데 6m나 되는 비단 위에 그려졌다. 이 불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왼쪽은 약사불화, 가운데에는 석가후불탱화, 오른쪽은 아미타탱화가 있다. 모두 짜임새 있는 구성과 불·보살상의 뛰어난 묘사, 안정감 있는 색깔, 정교한 장식표현 등이 조선시대 후기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직지사 대웅전은 짜임새 있는 규모와 화려한 모습 등 뛰어난 건축미를 보여주는 조선 후기(18세기)의 건물이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보물 1576호)

▲ 직지사 대웅전이 보물로 예고되면서 현판이 이완용이 쓴 글씨라고 알려지면서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보물 지정 확정(2008.09)

직지사 대웅전은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까지는 좌측의 계곡을 끼고 지형에 맞추어 휘어져 올라온 북쪽에 위치하며, 萬歲樓에서 대웅전에 이르기까지는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禪堂이 위치해 있으며, 대웅전 앞 뜰에는 2개의 3층탑이 놓여 있는 2탑식 중정형 가람배치를 가진다.

직지사 대웅전 가구의 구성 및 부재의 표현기법은 조선후기의 건축적 특징이 잘 표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직후 재건된 불전들의 경향을 보이며, 아름답고 뛰어난 기법을 보여주는 내·외부 많은 벽화와 불단이 남아 있는 등 보물로 지정해 보존할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직지사 대웅전 삼존불탱화(보물 670호)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된 후불탱화로 비단바탕에 채색되었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로, 일반적으로 이 직지사처럼 대웅전 본존불의 뒷벽에 위치한다. 조선 후기에는 대웅전이나 대광명전 등에 흔히 3폭의 불화를 봉안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인데, 이 불화도 그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중앙에 석가여래의 영산회상도, 왼쪽에 약사회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의 극락회도를 배치하였다.

▲ 대웅전 내부의 수미단(용, 물고기, 개구리, 연꽃 등 여러 무늬들이 조각) 모습 ▼

중앙에 배치된 불화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여러 불·보살에게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영산회상탱화이다. 화면의 중앙에 석가불이 있고 좌우에 8보살과 10대제자, 사천왕 등이 그려져 있으며 둘레에 많은 범문을 써 놓았다. 왼쪽 어깨에만 옷을 걸친 석가불은 악귀를 누르는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비교적 균형잡힌 체구와 둥근 얼굴에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세밀하게 그렸다.

왼편에 있는 약사회상탱화는 화면의 중앙에 약합을 든 약사여래가 앉아 있고 그 주위에 8대보살과 사천왕, 12신장 등이 에워싸고 있는 복잡한 구도이다. 본존불의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한 모습인데 비하여 얼굴은 지극히 작은 눈과 입 등이 매우 단아하고 엄숙한 인상을 풍긴다. 이러한 모습과 등뒤의 물결무늬 원형광배, 옷의 문양표현 등이 18세기 불화의 시대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른편의 아미타회상탱화는 중앙에 아미타불을 두고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을 비롯하여 신장상 등이 주위를 둘러싼 구도이다.

이 세 폭의 탱화는 영조 20년(1744) 세관, 신각, 밀기 등 10여명의 화승들이 그린 것을 염불도인 진기와 지영(智英)스님이 증명한 것으로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뛰어난 묘사력, 안정감 있는 색감 등으로 당시 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에 속한다.

* 증명 : 그림이 경전이나 교리의 내용에 합당한지, 또는 법대로 그려졌는지를 확인하고 감독하는 스님을 일컫는 것으로, 그림을 직접 그리는 화원(화사, 금어, 출초, 편수 등)과 구분되어 사용됨

▲ 응향각

▲ 성좌각

▲ 범종각

▲ 향적전

▲ 관음전

▲ 응진전

▲ 사명각(사명대사의 영탱 봉안)

▲ 명부전

▲ 약사전

직지사 비로전 앞 삼층석탑(보물 607호)

직지사 비로전 앞에 세워져 있는 3층 석탑이다. 1974년 대웅전 앞 3층석탑 2기와 함께 경상북도 문경 웅창마을 북방 금강가의 옛 도천사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1단의 기단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리고 있다.

바닥돌은 넓적하게 짜여져 있으며, 그 위로 여러 장의 석재를 조성한 2단의 높직한 괴임을 두어 기단을 받치고 있다. 기단은 몇 개의 널돌로 구성되었으며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이루어져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뚜렷한 기둥 모양의 조각이 있다.

▲ 비로전 앞 삼층석탑 전경

지붕돌은 얇고 평평한 편으로 밑면의 받침을 5단씩 두었고, 날카롭게 들린 네 귀퉁이로 인해 경쾌함이 느껴진다. 탑신의 1층 몸돌이 2·3층에 비해 매우 높으나, 전체적으로 비례가 적절한 세련된 모습으로, 9세기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 황악루

▲ 안양루(천불선원은 출입금지)

▲ 천불선원 앞 뜰 전경(태실과 안양루)

▲ 태실(누구의 태실인지는 모름)

▲ 청풍료(박물관)

▲ 박물관 입구 계단의 석조물

▲ 태실 난간석으로 추정

▲ 박물관은 답사 당시 미개방으로 외부 전시물만 둘러 봄

직지사 청풍료 앞 삼층석탑(보물 1186호)

▲ 청풍료(박물관) 뒷편에 있습니다.

강락사라고 전해지는 옛 절터에 무너져 있던 탑으로, 1968년 경북 선산군 군청 앞뜰에 옮겨 복원하였고, 1980년 10월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1단의 기단 위에 3층을 탑신을 세우고 머리장식을 얹은 구조이다.

기단은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면의 중앙에도 기둥 하나씩을 조각해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기 한 돌로 짜고,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각 층 모두 5단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하였고, 빗물을 받는 낙수면은 반듯하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려져 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1980년 탑을 옮겨 세울 때, 같은 시기의 석탑을 모방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다. 지붕돌의 치켜 오른 정도나, 밑면의 받침수, 각 부의 세부적인 양식으로 보아 9세기경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금동 육각 사리함(국보 208호)

경상북도 선산군 도리사에 있는 종 모양의 세존사리탑 안에서 발견된 사리함이다.

사리함은 높이 17㎝로 기단, 탑몸, 지붕으로 구성되어 있고, 표면에 도금이 잘 남아 있다. 평면 6각형으로 각 면의 기단에 안상을 뚫었다. 2면의 탑몸에는 불자(拂子)와 금강저를 든 불교의 수호신인 천부상을 선과 점으로 새겼다.

남은 4면에는 사천왕상을 선으로 새겼다. 이들의 배치는 사천왕상 중에서 탑을 들고 있는 다문천을 중심으로 좌우에 천부상을 배치하여, 다문천이 정면이 되게 한 듯 보인다.

지붕 처마와 추녀에는 고리가 있어 장식을 달았던 것처럼 보인다. 꼭대기에는 연꽃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그 중심에 꼭지만 남아 있어 원래 꽃봉오리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8각이 유행하던 시기에 6각형의 사리함이 나타났다는 점이 특이하며, 시대를 달리하는 종 모양 부도에 안치되었던 것도 특이하다 하겠다.

 ◀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직지사 석조 약사여래좌상(보물 319호)

직지사에 모셔져 있으며 광배와 불상을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불상의 머리는 민머리이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마모가 심해 세부표현을 자세히 살필 수 없지만, 둥글고 풍만한 인상이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는데, 옷에는 평행 계단식의 무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고 있고, 왼손에는 약항아리를 들고 있어서 이 불상이 약사여래상임을 알 수가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폭이 넓어 맵시있는 모양은 아니지만 덩쿨무늬와 불꽃무늬를 새겨 장식하였다.

전반적으로 세부표현이 둔감해졌으며 광배의 무늬도 세련미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계승한 약사여래좌상으로 볼 수 있다.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

한천사 출토 금동 자물쇠 외 일괄(보물 1141호)

이 유물들은 1989. 1. 15 한천사경내 정비 작업중 발견된 유물로 금동 자물쇠 3점과 청동 반자가 발견되었다.

고려시대 금동자물쇠는 매우 드문 자료로 희귀하며 특히, 이 유물은 문양이 아름답고 의장이 미술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 출토지가 분명한 유물이다.

청동반자(靑銅飯子)는 고려때 반자양식의 일반적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출토품은 금동자물쇠와 같이 출토된 유물로 평면은 원형이며, 이면은 22.5㎝정도 반구(飯口)가 있으며, 그 주위를 약식화된 당초문으로 장식하고 있다.

 ◀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예념미타도량참법<권제6∼10>(보물 1241호)

예념미타도량참법은 아미타불을 지극한 마음으로 예배하면서 죄를 참회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의 절차를 수록한 책이다. 나무에 새겨 찍어낸 권6∼10의 5권을 1책으로 엮었다.

간행기록이 없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예념미타도량참법』권1∼5, 6∼10(보물 제949호)과 비교해 보면 판의 형식 등이 동일하여 같은 판에서 찍어낸 것으로 보인다.

책 끝에 있는 김수온의 글을 통해 성종 5년(1474)에 세조비 자성대왕대비가 선대왕과 왕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것이며, 왕실과 고승 및 당시 일류 기술자들이 총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판을 새긴 사람의 이름이 써 있는 것이 보물 949호와 다르다.

이 책과 같이 판을 새긴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는 책이 더러 있는데, 그 책의 발문(跋文:책을 간행한 동기 등을 적은 글)을 통해 성종 5년의 원본을 연산군 9년(1503)에 해인사에서 원본과 가깝게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

직지사 안내도

직지사 위치도

  바로 위에 직지사가 있습니다.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