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한국문화

전주경기전에 가다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0. 12. 28. 19:02

전주경기전에 가다

 

 

 

   전주로 들어설 무렵 우린 경기전과 풍납문과 한옥마을을 생각하며 일단 네비게이션에 '경기전'을 입력했다. 안내에 따라 쉽게 길을 찾아가서 경기전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는데 5시가 넘었는지 주차관리원이 없었다. 공무원이 퇴근하는 바람에 편하게 자유주차를 하였다. 그런데 비가 내리고 있어서 우산을 쓰고 관람을 해야 했다. 40여년이 넘는 생애에도 불구하고 전주에는 초행길이다 보니 모든 것이 새롭고 생소했다. 일단 경기전으로 들어섰다.

 

   경기전은 풍남문에서 동쪽으로 150m 쯤의 위치에 있다. 사적 제339호로 지정된 경내에는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경기전과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된 조경묘가 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이태조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1410년)에창건하였다.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왕기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서 태조의 어용을 봉안하였으며, 태종 14년(1414년)에 건립되었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은 창건 당시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는 태조진전이라 하였다가, 세종 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숭전이라 하였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네 곳에 있었던 태조 어용전은 전부 소실되었다.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옛 전주부성내 동남쪽에 광대한 면적을 점유하고 있었으나, 일제 때에 그 서쪽을 분할하여 일본인 전용인 수상소학교를 세움으로써 경기전 절반 이상의 땅을 상실하였으며, 부속된 건물은 이때 거의 철거되었다. 현존 건물인 전각은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서, 전면에 하마비, 홍살문, 외삼문, 내삼문등이 있다. 경기전에 봉안된 어용은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한 것이었는데, 세종 24년(1442년)7월에 집경전의 어용과 함께 개화하여 동년 10월에 봉안했다. 현재 경기전 어진은 고종 9년(1872년) 9월에 개화한 것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보현사 별전에 봉안되었다. 

   그 후 어용은 여러 번의 수난을 겪었는데, 즉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년(1767년)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한 일이 있었으며, 고종 31년(1894년)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 경기전에 인접한 북쪽에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 공과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는 영조 47년에 창건하여 영조가 친히 위패를 썼으며 동학혁명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할 때 태조의 영정과 함께 위봉사의 행궁에 옮겼다가 7월에 다시 전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경기전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많은 전시물이 눈을 끌었다. 흥미롭게 지켜 보다가 모두는 한옥마을을 대략 둘러보기로 했다. 한동알 둘러보고 나오는데 무지개가 아주 선명하게 세워져 있었다. 행운이 함께할 일이 있나 보다.

   시장끼를 면하고자 시간을 끌면서 걷기도 하였던터라 전주비빔밥을 먹으러 가는 동안에는 신났다. 한옥마을에서 아내는 가이드맵을 펼쳐들고는 이곳 저곳을 말하고 있었다. '한국관이 이떨까요?'하기에 일단 차량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차량에는 전주시청에서 소개한 비빔밥집을 몇군데 적어 두고 별표를 한 곳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관으로 전화를 하고 이동했다. 예약은 필요 없는 곳이었다. 거리는 약 5km 정도라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먹는 전주에서의 전주비빔밥이 기대되었다. 한참후 나온 비빕밥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맛나는 식사를 마치고 우리의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은 비가 멎었다. 거리상으로 90km정도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아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 우리집이 제일이야" 한다. 나가서 자는 것을 그토록 원하던 녀석 입에서 나온 일성이었다. 아마도 인터넷이 안되어서 다른 숙소는 싫다는 것일 것이다. 모두들 피곤할텐데 씻고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는 동안 나는 사진을 정리했다.

 

 

 경기전 입구에는 아픈 우리의 역사를 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안내문이 묵묵히 서 있다.

 우측에 신도(神道)라 하여 중앙으로는 다니지 않도록 한 경기전 본전이 보인다.

 전주사고의 모습이다.

 좌측의 대나무 숲길과   우측의 경기전 입구에 세워진 하마비의 모습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경기전 바깥에 우측으로 담장을 따라 예쁜 꽃길이 조성되어 있다.

 작은 박물관이 조성되어 있었으나 시간상 들어가보지 않았다.  마을 길은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었다.

 담장의 벽돌 하나도 관심을 끌었다. 사찰이 아닌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소리가 들렸다.

 간판 이름도 재미있다. 주인장은 분명 재미있는 분일 것이리라.  우리를 반기며 무기개가 활짝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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