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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민 건강의유람터 / 금봉산(충주남산)등산(5)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2. 3. 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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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민 건강의유람터 / 금봉산(충주남산)등산(5)

충주산성은 충주시 직동 해발 636m의 정상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 산성은 일명 남산성, 금봉산성으로 불리으며 충주 동쪽의 계명산 영액과 서쪽의 대림산성, 북쪽의 탄금대 토성지와 함께 충주의 사방을 방어하기 위하여,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성이다.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강의 합류지점인 분지로써 토지가 비옥하고 기온과 물의 사정이 좋아서 선사 시대부터 취락이 이루어 졌던 곳이다.
지형은 충주의 남쪽으로는 한반도를 가로 지르는 백두대간이 가로막아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해 주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남한강과 달천강이 흘러 자연스럽게 배수의 진을 형성하여 주는 바 일찍부터 서울과 강물을 이용한 수운이 통하고 있었다. 따라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거점지역으로 매우 중요시 되던 지역이 바로 충주였다.

 

 

 

 

 

충주는 옛날부터 삼국시대 각국의 변경으로 치열한 격전지였다.그 흔적이 고구려의 유산인 중원고구려비, 신라의 유산인 누암리 고분군이며 충주산성 또한 그같은 사례이다.충주산성은 충주시에서 동남쪽으로 4km쯤 떨어진 남산(636m) 위에 있다.축성에 대한 유래는 기록이 분명치 않아 알 수 없으나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 하여일명 마고성이라고도 하며, 또한 백제 구이신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충주산성은 대몽항전의 전적지로 유명한데, 고려 고종 9월에 몽고군의 4차 침입을 물리쳤고, 12월에는 70일간의 항전으로 몽고군을 격퇴시킨 역사의 전적지이다.성의 높이는 5∼7m 정도이며 주위는 1.2km 정도이나 거의 무너지고300m 가량 남아 있었는데 1998년부터 성 복원 공사를 하여 현재 700m 가량 축조하였으며 계속 정비 중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1977년에 무너진 곳의 일부를 보수하였고 1986년도에 지방비 예산을 투입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 팀에 의하여 발굴 조사한 바 있다.

 

 

 

충주남산등정은 충주산성을 지나며 하산길에 든다. 등산길도 그랬지만 하산길에도 등산인들의 안전을 위한 계단등 편의시설들이 있어 누구나 남산을찾는 등산인들은 편안한 등산을 할수 있다.

 

 

 

 

 

하산길은 보편적 수월하긴하나 까끔 급경사가 있기도 한데 이런곳에는 산행객들을 위해 바줄등 편의시설들이 있어 하산을 도와 주고 있다.

 

 

 

줄을 잡고 서서히 하산하고 있는 등산객 들의 모습이 눈에 뜨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