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고인돌 유적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강화 고인돌(강화군 하점면 부근리ㆍ사적 제137호). 거대한 지붕 돌에서 느껴지는 웅장함이 시간을 거슬러 선사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준다. 전체 높이 2.6 m인 강화 고인돌은 지붕 돌의 긴 쪽의 길이가 6.5 m, 너비 5.2 m, 두께 1.2 m로 탁자식 고인돌 중에서 우리 나라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탁자식 고인돌이란 탁자처럼 다리 돌을 좌우에 세운 뒤 그 사이에 흙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지석 위에는 지붕 돌을 얹는 형태를 말한다. 긴 통로처럼 보이는 다리 돌 양 끝에는 원래 막음 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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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리 고인돌군(강화군 내가면 오상리 일대)은 내가 고인돌(사진 맨 앞ㆍ인천시 기념물 제16호)을 비롯해 모두 12 기의 고인돌이 100여 평의 공간에 모여 있다. 강화도 일대의 고인돌군 중에서 가장 밀집된 형태를 보인다. 오상리의 고인돌군 역시 강화 지석묘처럼 탁자식 고인돌 형태이지만, 크기는 훨씬 작다.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돼 막음 돌이 있는 고인돌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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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돌이 무너진 부근리 점골 고인돌(강화군 하점면 부근리ㆍ인천시 기념물 제32호)의 모습. 수천 년이 흐르면서 무너져 내린 고인돌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강화도에는 부근리를 비롯해 고려산 기슭을 따라 삼거리, 고천리 등에 120 개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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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리 고인돌(강화군 강화읍 대산리ㆍ인천시기념물 제31호)은 강화도의 고인돌 중 유일하게 군집을 이루지 않은 대형 고인돌이다. 이 때문에 농가와 밭 사이에 놓여 있는 대산리 고인돌은 찾는 이도 드문 편이다. 지붕 돌의 긴 쪽 길이는 3.8 m, 너비 2.6 m, 두께 50 cm이며, 전체 높이는 약 1.8 m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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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고인돌 유적(고창군 죽림리와 도산리 일대ㆍ사적 제391호)은 매산 마을을 중심으로 동서로 약 1.7 km 범위에 무려 442 개가 분포해 우리 나라에서 최대 규모의 고인돌 군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에서는 탁자식은 물론 바둑판처럼 다리 돌 대신 4~8 개의 굄 돌을 놓고 그 위에 지붕 돌을 얹은 바둑판식 고인돌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만나게 된다. 바둑판식 고인돌은 탁자식에 비해 지붕 돌이 훨씬 두껍고 무겁다. 가장 무거운 지붕 돌은 무려 300 t이나 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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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고인돌 유적(효산리 및 대신리 일대ㆍ사적 제410호)은 비교적 최근에 발견돼 보존 상태가 좋다. 특히, 화순 고인돌 유적에서는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 주는 채석장이 함께 발견돼 당시 돌을 다루는 기술이나 쌓는 법, 운반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적으로 높이 평가 받는다. 효산리와 대신리 계곡을 따라 약 10 ㎞에 걸쳐 500여 개의 고인돌이 분포한다. 이 곳 역시 고창 고인돌 유적처럼 탁자식과 바둑판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있다. |
선사시대 돌무덤의 일종인 고인돌(지석묘)은 인류의 거석 문화를 잘 보여 주는 역사 유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지역에 따라 그 시기와 형태가 다르다. 동북 아시아에 가장 많이 분포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에는 약 3만여 개 고인돌이 발견돼 거석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고인돌은 기원전 2000~3000년의 장례 문화와 무덤의 흐름 및 변화를 생생히 보여 주는 유적으로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전라 북도 고창군, 전라 남도 화순군, 인천 광역시 강화군 일대의 고인돌 유적 등 모두 3 곳이 지난 2000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됐다.
강화 글=윤석빈 기자 binys@snhk.co.kr
강화 사진=황재성 기자 goodluck@s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