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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548호(구례 화엄사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좌상)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0. 12. 20. 11:06

 

보물 1548호(구례 화엄사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좌상)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신라 경덕왕 13년(754) 황룡사 승려 ‘연기조사’의 발원으로 건립된 화엄종 사찰로 ‘도선국사’가 도참설에 의해 중창하였고, 조선시대 ‘벽암각성’의 중창이후 선·교 양종 총림 대도량의 역할을 하였다.

대웅전과 누문을 잇는 중심축과 각황전과 석등을 연결하는 동서축이 직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가람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경내에는 국보 제67호 ‘화엄사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8점 등 중요 문화재가 있어 역사적·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 서오층석탑에서 계단을 오르면 각황전 앞에 석등이 있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 세워진 이 석등은 전체 높이 6.4m로 한국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이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이라고도 하는데, 대개 사찰의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배치된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

8각 바닥돌 위의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큼직하게 조각해 놓았고, 그 위로는 장고 모양의 가운데 기둥을 세워두었다. 장고 모양의 특이한 기둥형태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것으로, 이 석등은 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둥 위로는 솟은 연꽃무늬를 조각한 윗받침돌을 두어 화사석을 받치도록 하였다. 8각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4개의 창을 뚫어 놓았다. 큼직한 귀꽃이 눈에 띄는 8각의 지붕돌 위로는 머리 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어 전체적인 완성미를 더해준다.

▲ 석등의 상륜부와 기단부 모습

이 석등은 통일신라 헌안왕 4년(860)에서 경문왕 13년(873)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석등 뒤에 세워진 각황전의 위용과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약간의 둔중한 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활짝 핀 연꽃조각의 소박미와 화사석·지붕돌 등에서 보여주는 웅건한 조각미를 간직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화엄사 각황전(국보 67호)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으며, ‘각황전’이란 이름은 임금(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 각황전 측면과 후면 모습

이 건물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돌기단 위에 앞면 7칸·옆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집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라 매우 화려한 느낌을 준다.

건물 안쪽은 위·아래층이 트인 통층으로 3여래불상과 4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인데, 벽쪽 사방으로 돌아가면서 경사지게 처리하였다. 각황전은 건물이 매우 웅장하며 건축기법도 뛰어나 우수한 건축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구례 화엄사 화엄석경(보물 1040호)

석경(石經)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 것인데, 화엄석경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의 돌에 새긴 것이다. 통일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에 각황전을 세우고 이곳에 화엄석경을 보관하였다. 각황전의 안쪽 벽에는 현재 그림이 걸려 있으나, 원래는 여기에 화엄석경이 벽을 이루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석경에는 네모진 돌들을 서로 맞추어 끼웠던 듯 모서리에 연결을 위한 홈이 파여져 있다.                                                            화엄석경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화재로 석경들이 파손되었고, 색깔도 회갈색 등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파손된 것을 모아 지금은 약 9천여 점이 남아 있다. 글씨체는 해서체로 최치원이 정강왕 2년(887)에 쓴 쌍계사 진감국사비문과 비슷한데, 당시의 글씨체를 잘 보여주고 있어 희귀한 석경의 대표적인 예로 주목되고 있다. 이 화엄석경은 우리나라 화엄종 사찰의 상징적 유물로서 비록 파편이기는 하나 신라 후기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35호)

▲ 각황전 좌측 계단으로 오르면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이 나타납니다.

탑은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절 서북쪽의 높은 대지에 석등과 마주보고 서 있으며,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는데,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위층 기단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를 각 모퉁이에 기둥삼아 세워 놓은 구조로, 모두 앞을 바라보며 입을 벌린 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다. 사자들에 에워싸여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있는 스님상이 있는데 이는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하며, 바로 앞 석등의 탑을 향해 꿇어앉아 있는 스님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한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문짝 모양을 본떠 새기고, 양 옆으로 인왕상, 사천왕상,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평평한 경사를 보이고 있는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이 있으며, 처마는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과 복발만이 남아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위층 기단의 사자조각은 탑 구성의 한 역할을 하고 있어 불국사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이형 석탑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 각황전 좌측 젼경

화엄사 원통전 전 사자탑(보물 300호)

이 탑은 절 안의 원통전 앞에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독특한 석탑으로, 네 마리의 사자가 길쭉하고 네모난 돌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절에서는 보통 노주라고 부르는데, 무엇으로 사용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며, 불사리를 모셔놓은 것이라 하기도 하고, 불가의 공양대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 기단은 2단으로, 아래층 기단은 무늬없는 석재로 구성된 소박한 모습이다. 이 탑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인 위층 기단은 각 모서리에 사자상을 놓은 모습이다. 사자들은 연꽃받침 위에 앉아 연꽃이 조각된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탑신에는 직육면체 모양의 몸돌이 있다. 몸돌의 각 면에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그 안에 신장상을 조각하였다.

몸돌 위에는 1장의 판돌이 있는데, 밑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반구형의 돌이 솟아 있다. 위층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은 이곳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을 모방한 것이나, 조각수법은 이에 못미처 이보다 훨씬 뒤인 9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 사자탑 앞에서 내려다 본 1층 경내 전경

▲ 나한전(각황전 우측 위치)

▲ 원통전

▲ 영전

▲ 대웅전 앞에서 바라 본 각황전 모습

화엄사 대웅전(보물 299호)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화엄사의 건물 중 각황전(국보 제67호) 다음으로 큰 건물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인조 8년(1630)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든 우물 천장이며, 삼존불 위쪽으로 장식적인 성격을 띠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놓아 엄숙한 분위기를 한층 높이고 있다. 규모도 크고 아름다우며 건축 형식의 특징과 균형이 잘 잡혀있어 조선 중기 이후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 대웅전 좌우측 모습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탱(보물 1363호)

▲ 비로자나불도

▲ 노사나불도

▲ 석가모니불도

화엄사 대웅전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 등 삼신불을 그린 탱화인데,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이 삼신불탱은 3폭으로 되어 있는데, 중앙의 비로자나불탱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노사나불탱,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탱을 각 한 폭씩 그렸다.

법신인 비로자나불도는 화면 중앙 상단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인 문수·보현보살과 8대보살, 4위의 타방불과 6위의 제불, 사자와 코끼리 탈을 쓴 성중(호계대신, 복덕대신)들이 에워싸듯 배치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다. 키 모양의 광배를 가지고 있는 본존불은 결가부좌한 채 앉아 있으며, 지권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귀·눈·입·코 등이 단정하게 표현되어 있고,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귀는 기다랗고, 다자색 법의의 깃을 따라 연두빛과 분홍빛깔의 보상화무늬가 장식되어 다소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보신인 노사나불도는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올려 설법하는 모습의 손모양에 보관을 쓴 보살형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과 사천왕상 2위, 4위의 타방불, 3신장과 4금강이 주위에 빙둘러 배치되어 있다. 단정한 귀·눈·입·코 등에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는 있으나, 둥근 머리광배에 보관을 쓰고 귀걸이·목걸이·팔찌·구슬 장식 등을 화려하게 장식하여 보살형 불상으로서의 꾸밈이 돋보인다.

화신인 석가모니불도는 유난히 몸광배가 큼직한 키형 광배에 악귀를 물리치는 뜻을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하단에는 문수·보현보살을 포함한 6대보살과 함께 2구의 사천왕상을 그리고, 그 위로는 흔히 등장하는 타방불 대신 가섭·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제자 및 4금강과 3신장, 용왕·용녀를 에워싸듯 배치하였다.

이 삼신불탱은 18세기 조계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의겸 스님 외 13명의 화원이 동원되어 그린 뛰어난 작품으로 필선이 섬세하며 녹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길이가 4m를 넘는 거대한 3폭의 화면에 삼신불을 완전히 갖춘 매우 드문 예로, 통도사대광명전삼신불도(보물 1042호)와 더불어 18세기 삼신불도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구례 화엄사 목조 비로자나 삼신불좌상(보물 1548호)

▲ 비로자나

▲ 석가여래

▲ 노사나

화엄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은 화엄사상의 삼신불인 비로자나, 노사나, 석가불을 표현한 것인데, 도상면에서 법신, 보신, 화신(응신)을 나타내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이러한 삼신불은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으로는 드문 편이다.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는 이른 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삼신불상은 크기가 거대하고 단순하고 깊이의 강약이 느껴지는 굵직한 옷주름의 표현은 한층 상의 중후함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화엄사사적기』에 의하면 1636년 조각승 청헌, 영이, 인균, 응원 등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승려장인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상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화엄사 대웅전은 삼신불상은 조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고,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17세기의 기준이 되는 불상으로 높은 의의가 있는 상으로 평가된다.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 명부전

▲ 삼전의 광희문

▲ 대웅전 뒷편에 잇는 목조 수조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301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화엄사에 있는 이 괘불의 크기는 길이 11.95m, 폭 7.76m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보현보살과 사천왕상 등이 배치되었다. 화면 중앙의 석가불은 높다랗게 만둘어진 단의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으며, 마귀를 물리친다는 의미의 손가락을 땅으로 향한 손모양을 취하고 있다. 둥근 얼굴과 어깨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느낌을 주고 필선은 매우 섬세하고 치밀해 세련미를 더한다.

석가불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석가를 모시며 서 있다. 사천왕 중 2구는 그림의 하단에, 2구는 상단에 배치해 마치 네 모서리를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각 상들의 얼굴은 둥글고 커다란 눈에 작은 코와 입, 길다란 귀를 가지고 균형잡힌 모습으로 서 있다. 홍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고 중간색을 사용해 은은하면서도 밝은 느낌을 주며 채색무늬와 금색무늬가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만들어진 이 괘불은 각 상들의 늘씬하고 균형잡힌 형태, 밝고 선명하며 다양한 색채, 치밀하고 화려한 꽃무늬장식 등에서 17세기 중엽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구례 화엄사 안내도

구례 화엄사 위치도

                                             화살표 위의 1번이 화엄사입니다.                                     소재지 :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