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1545호(나주 불회사 건칠 비로자나불좌상)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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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불회사 큰법당 번와 불사 때 발견한 [호좌남평덕룡산불호사대법당중건상량문]의 기록에 의하면 불회사는 동진 태화 원년(366년) 마라난타스님이 창건하고, 신라의 이인(異人) 희연조사(熙演祖師)가 당나라 현경 초에(656년) 재창하였으며, 삼창은 원말 지원(至元) 초(1264년경) 원진국사(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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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회사 입구 좌우에 서 있는 석장승 모습 |
위 상량문의 내용이 정확한지는 지금 단정할 수 없지만 그 기록을 받아들인다면 마라난타 존자가 내륙을 통하지 않고 물길을 따라 당시 삼한 중 마한의 근거지라고 추정되는 나주 지방으로 들어왔을 경우 영산강 포구를 통하여 불회사로 들어와 자리 잡게 되는 경로를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불회사는 한국에서 최초로 건립된 사찰이 됨과 동시에 한국 불교 전래를 6년이나 더 앞당기게 되는 것이다. |
나주 불회사 석장승(전남 중요민속자료 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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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 입구에 서있는 2기의 돌장승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하는데 이 장승 역시 경내의 부정을 금하는 수문신상이다. 불회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높은 산을 뒤로한 협곡에 자리잡고 있다. 절 앞 300m 되는 지점의 길 양쪽으로 마주보고 서있는 이 장승은 남·녀의 모습으로 구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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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승은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시되었고, 머리 위에서는 상투를 튼 모습을 흉내내었다. 송곳니가 드러나고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이 새겨있다. 여장승은 남장승에 비해 표정이 온화하고 얕은 선으로 표현되었다. 미소 띤 얼굴에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원래 명칭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이란 이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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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승 모두 크고 둥근 눈에 두리뭉실한 주먹코이다. 얼핏보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옮겨다 놓은 것 같기도하고 나주 운흥사 석장승(중요민속자료 제12호)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민간의 무속신앙과 불교신앙이 혼합된 상징적인 조형물로서 험상궂은듯 하면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이 친근감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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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장승을 지나서 불회사로 들어서기 직전의 좌측 언덕에 연리지가 있다고 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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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회상 입구 좌측에 있는 부도 전경 |
불회사를 들어서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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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등의 지리서를 보면 불호사(佛護寺)로 기록되어 있어, 처음 창건 때는 불호사였다가 대체로 1808년(순조 8)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불회사로 절 이름이 바뀐 듯하다. 결국 절은 삼한시대에 불호사로 창건되었다가 고려말~조선 초기 원진국사에 의해 크세 중창되어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추측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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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회사 좌우 원경과 중앙에는 불회사로 들어가는 진여문과 천왕문이 함께... |
한편 대웅전 앞마당에 3종류의 괘불대가 있는데 이것은 불회사의 오랜 역사와 이 지역에서 사찰로써의 역할이 어떠하였는가를 짐작케 하는 유물이라 하겠다. 맨 오른 쪽 풍상의 마모가 가장 많이 된 것은 언젠지는 모르나 처음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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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을 지나서 바라 본 좌측 경내 전경 |
▲ 대양루 |
▲ 대양루 중앙 통로에서 바라 본 대웅전 |
그 다음에 있는 가장 웅장하고 잘 조성된 것은 아마도 3창주 원진국사 시절에 이루어 졌으며, 그리고 네 짝으로 완전한 형태를 지닌 맨 왼 쪽의 것은 아마도 제 4창 당시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현재 대웅전 뒤편 벽면에는 괘불을 보관하였던 함이 있는데 그 규모로 보아 불회사에 웅장한 괘불이 그 당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불회사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 13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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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 대웅전은 상량문 및 건축수법 등으로 볼 때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집이다. 자연석 기단위에 세워진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인데 한국전쟁 이전에는 꽃살문으로 장식 되어 있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덤벙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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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좌측 전경 |
▲ 대웅전 우측 전경 |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 양측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는데 외부살미의 끝은 심하게 휘어져 올라가 있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 또한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 용두는 외부로 힘차게 빠져나왔고 그 꼬리는 내부로 힘차게 뻗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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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내부 전경 |
건물의 양측면 중앙에서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을 걸어 그 머리를 용두로 장식하여 대량에 걸치었는데 이러한 결구법은 조선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건물의 내부 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는데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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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뒷편 모습 |
▲ 대웅전 기둥은 자연석 기단 위에... |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른 것으로 보이나 가운데 칸의 양 기둥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즉,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어 넣은 수법, 양쪽 대들보 사이로 상호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수법에 있어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
대웅전 우측 편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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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부전과 내부 전경 |
대웅전 좌측 편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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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각 |
▲ 영산전 |
▲ 응향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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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검당(경내 좌측) |
▲ 사운당 방향에서 바라 본 경내 전경 |
▲ 사운당(경내 좌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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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 우측에 있는 굴뚝과 석재들... |
나주 불회사 건칠 비로자나불좌상(보물 154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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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회사 대웅전의 주존으로 모셔진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에 특히 많이 조성된 건칠불상이다. 양식적으로 이 불상은 다소 길어진 신체의 비례와 형태, 작아진 얼굴, 착의형식, 옷 주름의 표현 등에서 고려후기 불상 양식을 계승한 조선 초기에 제작된 상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먹 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쥔 형태의 지권인의 수인은 고려후기의 화엄경 변상도에 등장하는 비로자나불의 수인인데, 불회사 상은 현존하는 조각에서 이 수인이 표현된 이른 예일 뿐만 아니라 조각적으로도 우수한 불상이다. ◀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
나주 불회사 원진국사 부도(전남 유형문화재 22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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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불회사 대웅전 건너편의 산중턱에는 고려 말에 세운 원진국사의 부도가 있고, 그 밑에는 이름모를 스님들의 부도가 놓여져 있습니다. 원진국사(1171∼1221)는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숨을 거두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리었다. ◀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왔습니다. ▶ |
나주 불회사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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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불회사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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