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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독립과 평화통일의 큰 별 <몽양 여운형>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24. 8. 17. 10:13

조선 독립과 평화통일의 큰 별 <몽양 여운형>

1886.5.25 ~ 1947.7.19 몽양 여운형선생

광복에 대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여운형 선생은 청년 시절 동학을 근본으로 한 평등의 이념을 실천하며, 기독교를 통해 습득한 신학문을 기반으로 애국계몽운동을 펼쳐 나갔다.

1918년 중국 상해에서 3.1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한 '신한청년당'을 만들었고, 파리강화회의에 우리나라 대표로 김규식을 파견하는 일을 주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적의 심장부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한 도쿄제국호텔 연설에서 우리의 독립 의지와 열망을 세계에 알렸다.

중국, 소련 등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1929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른다. 1933년부터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취임해서 민족문학 발굴, 체육활동 후원 등 민족언론의 역할에 앞장섰다.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신문은 폐간되었지만 이후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는 등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해방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정부 수립을 준비했으나 미국정에 의해 해체되었다. 하지만 통일된 정부와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위해 국내의 세력 분열을 막고자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고 좌우합작운동에 앞장섰다.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한 몸에 받던 여운형 선생은 1947년 7월 19일, 12번째 테러였던 괴한의 총격에 의해 서거했다. 장례는 60여만 명의 추모 물결 속에 인민장(최초의 국민장)으로 진행되었다.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글, 그림 유 준 책자 발췌

<몽양여운형기념관 활성화사업 후원>

[출처] 조선 독립과 평화통일의 큰 별 <몽양 여운형>|작성자 Lu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