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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충청감영 문화제 열려​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24. 8. 25. 12:00

2024 충청감영 문화제 열려

충주의 찬란했던 옛 정성기 시대를 되살리고 앞으로의 충북도청을 유치하기위한 염원이 실린

2024 제11회 충청감영 문화제가 8월23일 16시 성내충인동일원에서 열렸다. 충주관아를 한바퀴 돌아보는 충청관찰사 출력행차를 시작으로 18시 관아공원 청녕헌에서 충청관찰사 추모제가 실시됐다.

충청감영 문화제는 2013년 충주민속보존회장이며 당시 성내충인동주민자치위원장 이었던 임창식씨가 충주의 찬란했던 정성기를 되돌아보고 당시의 현장을 재연함으로서 충주발전을 염원하는 뜻깊은 행사로서 2013. 11. 1 (금) 15:00~19:30 첫 막을 열었으며 오늘에 이뤘다.

1400년대 충청도 행정을 관활한 충청감영(현재의 충청남,북도의 도청) 이 바로 한반도의 중심고울 충주 라는 사실을 아는지? 현재는 1908년 6월 5일, 충주에서 도청(당시 명칭으론 도관찰부)이 청주로 옮겨가면서 중소도시로 전략했지만 충주는 정치, 문화, 경제, 국방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찬란했던 지역 이었다.

 

이렇듯 역사와 조상의 혼이 서려있는 충주가 세월의 흐름속에 묻혀 후세들이 이런 사실도 모르채 묻혀저 살아감이 아쉬워 옛 충주의 찬란했던 그때를 되새기며 당시의 관습을 재연함으로서 현대를 살아가는 후세들에게 충주발전과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충청감영문화제를 열어 교육의 장이 되고자 함이다.

16시 관아공원을 출발한 출력행사는 당시의 행차를 재연한 장면으로 관찰사 행차시 먼저 악대가 선두에서 관현악기를 연주하며 행열한다.

이어 기마행열이 재연을 하며 행진을 한다.

기마행열에 이어 충청감사의 출력행차가 진군하는데 행차에는 관찰사를 대신하여 관활 관장인 성내충인동장이 행차를 대신했다.

이어 옛 풍속을 대신하여 선비들의 행열이 이어 진다.

이어진 행열에는 민보존회의 풍물놀이가 농악을 울리며 행진 한다.

이어진 행열은 당시의 평민들의 모습인데 농군과 아낙네가 행열의 뒤를 따른다.

이렇게 진행된 관찰사출력 행차는 당시 충청관아인 성내충인동을 돌아 관아공원으로 복귀한다.

이어 충청관찰사 추모제가 이어 지는데 추모제는 청녕헌에서 실시됐다.

관찰사 추모제는 당시를 재연한 것인데 마치 타이머신을타고 나타난듯 옛 풍습이 재연 됐다.

충청관찰사 추모제는 옛 관아인 청녕헌에서 실시됐다.

추모제는 제례방식을 재연한 것으로 마치 당시의 장면을 보고있는 느낌이다.

렇게 하여 충청

이관찰사 추모제는 옛 방식에 따라 엄숙히 진행 됐으며 2024 충청감영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충주의명성과 문화가 살아있는 충주관아공원

아래글은 관아공원에 남아있는 충청감영의 혼이 서려있는 관아공원을 소개하는 순서로 관아공원의 역사를 수록한 내용이다.

충주관아공원은 조선시대 충주목사가 충주를다스리던 관아자리로서 역사와문화를 상기시키며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식공원 이다.

충주에는 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官衙)가 남아있는데, 그 건물들을 최근(1983년)까지 중원군청청사 일부로 사용하였던 것을 그 일대를 정비하여 관아공원(一名 中央公園 중앙공원)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주변에는 거수목(巨樹木)이 있어 고색이 창연한 관아건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관아건물로는 동헌(東軒)으로 쓰던 청녕헌(淸寧軒)과 내아(內衙)로 쓰던 제금당(製錦堂). 그리고 산고수청각(山高水淸閣) 솟을삼문이 잘 남아있다. 청녕헌은 지방문화재 제66호로 지정·보호받고 있는데 조병로 목사(趙秉老牧使)가 고종 7년(1870) 8월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해 10월에 중건하였다.

건물구조는 전면 7칸, 측면 3칸 목조와가 팔작집인데, 기와에 명문이 있어서 민간의 사찰(蒼龍寺 추정)을 헐어다가 지었음을 입증한다. 청녕헌이란 당호는 '天得以淸, 地得以寧'이란 글에서 인용한 것 같다. 장중한 맛이 한국의 건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제금당은 지방문화재 제67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데, 내아(內衙)로 쓰던 건물이다.

청녕헌과 함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병로 목사가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구조는 정면 6칸 반, 측면 2칸 팔각지붕인데 지방관아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단청(丹靑)이 되어 있다. 1983년 대수선을 하면서 발견된 단청문양을 그대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제금당이란 당호로 보아, 백성들에게 길쌈을 권장하는 뜻이 내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산고수청각과 내삼문도 관아에 부속된 건물들로 충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역사공부의 현장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다. 충주축성 사적비는 중앙공원을 찾아가도 흔히 지나치기 쉬운 유물이다.

 

지방문화재 제6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이 비는, 고종 6년(1869년)에 충주성을 축성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의 조병로 목사가 건립한 비인데 충주읍성의 규모와 문루(門樓)의 규모를 짐작 하게 하는 비이다.

 

성을 증축 할 때 참여한 인원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좌수 조광수외 65명의 명단이 기록 되어 있다. 관아공원의 주요시설은 청녕헌/ 제금당/ 충주축성 사적비/ 충청감영외문루 를 들수있으며 연륜이 엿보이는 거목과 수목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이으며 충주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바라보고 배우는 역사의 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