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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탄금대/우륵의향기와 신립의 얼리담긴곳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1. 12. 25. 13:40

 

충주탄금대/우륵의향기와 신립의 얼리담긴곳

 

우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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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팔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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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전경,멀리 충주시가보인다.탄금대는 원래 대문산 혹은 견문산으로 불리던 작은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되는 곳이며 산세가 평탄하면서도 남한강 쪽으로 나 있는 기암절벽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 경치가 탁월한 국민관광지이다.

1400여년전 신라 진흥왕 때에 가야국의 악성 우륵이 이곳에 와 풍치를 상미하며 항상 산상대석에 앉아서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해서 지금까지 탄금대라 불리고 있다.
임진 왜란 때에는 신입장군이 배수진으로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최후를 마친 곳이기도 하다. 산 정상 부위까지 포장이 잘 되어 있고 역사적 뒷이야기 이외에 넓은 야외음악당과 충주문화원, 권태응 선생의 감자꽃 노래비,충혼탑,궁도장,신립장군의 애환이 담긴 열두대와 순절비, 탄금대토성, 대흥사등이 자리 잡고 있다.

***** 열두대

열두대 아래 남한강에서 바라본 모습..열두대 바위탄금대 뒷편, 남한강 쪽에 있는 기암 절벽을 열두대라 부른다.
임진왜란 때 문경새재에 진을 치고 있던 신립장군은 아군의 나약함을 보고 이곳 탄금대에 배수진을 침으로서 죽기로 싸울 결심을 하였으나, 왜적의 신식무기와 전술착오로 패배의 한을 남겼다.
이 때 장군은 활을 빠르고 많이 쐈기 때문에 그 활의 열기를 식히고자 이 암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해서 열두대라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12번의 싸움 끝에 승산이 없자 이 곳 열두대에서 투신자결했다고 해서 열두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곳 바위에 올라 서면 전망이 아주 좋다.탁 트인 전망에 절벽 아래로 남한강을 갈라 놓은 무인도인 "용섬"과 좌측으로는 달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그 강물을 따라 멀리 내다 보면 국보 6호인 중앙탑이 아스라히 보이며 우측으로는 옛날 충주 비료 공장을 개조한 목행동 새한미디어 공장이 눈에 들어 온다.

악성우륵 추모비**** 우륵 문화재

1971년 예총 충주지부가 주관하여 자랑스런 향토문화를 정립시키기 위해서 가야금의 전승지인 탄금대를 중심으로 매년 가을에 연례행사를 마련한 충주 중원지역 문화 행사이다.
지금 이 축제는 명실공히 전국 규모의 제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 탄금대 토성

야외음악당 넘어 보이는 소나무 구릉지가 탄금대 토성지이다.탄금대 토성은 대문산(탄금대)에서 가장 동북쪽으로 치우치고 지세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강물을 바라보고 대문산 전체를 감제할 수 있는 곳이다.
이성은 흙으로 쌓았지만 많은 강돌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축성할 때 가까운 강의 돌을 많이 이용하였다고 보여진다.전체 둘레는 약 400m이나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120여m이며 삼국시대 토기 편들도 볼 수 있다.
이 성에 대한 기록은 찾아 볼 수는 없으나 신라 진흥왕이 낭성에 들러 우륵과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케 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혹 낭성이 이곳을 의미하는 것인가 추측할 뿐이다.


**** 감자꽃 노래비

항일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신 권태응 선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305cm로 선생의 감자꽃 노래를 적은 비이다.
비의 모양은 반 타원형의 돌 기둥을 앞을 자르고 위에서부터 노래비라 적고 감자꽃 가사를 적어 놓았으며 밑에는 직경 150 cm의 감자꽃을 만들어 원형 기둥에 붙인 모양이다.
감자꽃은 왜정치하의 울분과 항일 정신이 깃든 동요로 선생의 대표적인 노래이다.
노래가사는 다음과 같다.
감자꽃 노래비
   자주꽃 핀건 자주감자,
   파보나마나  자주감자
   
   하얀꽃 핀건 하얀감자
   파보나마나  하얀감자.



충혼탑
**** 충혼탑

감자꽃 노래비 옆 잘 다듬어진 잔디 밭에 충혼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이 탑에 봉안된 영령들은 해방 후 특히 6.25사변 때 국가의 방패가 되었던 충주지방의 전몰군경들이다. 충혼탑은 충주 상이군용사분회와 대한제대장병보도분회에서 호국영령들의 애국충정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1956년 9월 유서 깊은 전적지인 이 곳 탄금대에 건립했다.
특히 충혼탑이라는 글씨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친필이며 매년 현충일에 이 곳에서 기념행사를 하고 있다.



**** 탄금대 비
높이183cm, 폭66cm, 두께 34c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로 기미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육당 최남선이 비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비문의 내용은 충주의 연혁과 남산성에서 몽고군과 싸운 승장 김윤후 장군의 행적과 악성 우륵, 임진왜란 때 원통하게 자결한 신입장군의 충절심을 기린 내용을 담고 있다.

 

 안 내

 

 


탄금대에 진입하자마자 넓은 야외음악당과 충주문화원이 나옵니다.
이 곳은 충주지역 민속제인 우륵문화재 행사가 매년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아담한 산위로 굽이굽이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하나 둘씩 탄금대 볼거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신립장군순절비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나 산책삼아 걷는 것을 권장합니다.
탄금대의 또 다른 자랑은 탁 트인 넓은 솔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돗자리 깔고 김밥 먹기에 딱 좋은 장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빽빽한 소나무 숲속입니다.
감자꽃 노래비를 지나 내려가면 투박한 매점과 그 위로 언덕이 형성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인위적인 둔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탄금대 토성입니다. 우측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육당 최남선이 쓴 '탄금대비'와 현대식 정자가 운치를 더해 줍니다.
정자의 이름은 탄금정이며 올라서면 남한강아래 전경이 펼쳐집니다.
또한 누군가가 적어놓은 빽빽히 시문이 적혀 있는데 모두 탄금대를 노래한 선인들의 작품입니다. 그 중 청백리 박 상의 한시 한 편(해석편)을 소개합니다.
       

          탄 금 대
                                       박 상

       "깊고 긴 강 위에는 단풍이 들어
        신선대만 외로이 구름 속에 솟았구나.
        가야금 타던 사람 학을 타고 달로 가고
        피리 부는 나그네만 솔바람 속에왔네.
        만사는 한번이라 흐르는 물 슬프구나,
        덧없음을 탄식하며 쑥대머리 매만지네.
        뉘라서 호주목(湖州牧)을 그려낼 건가,
        석양에 거닐면서 미친 듯 읊조리네."

탄금정!!!!


탄금정 아래로는 신립장군의 애환이 담긴 열두 대가 있습니다.
옛날엔 이 아래 절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활을 식히러 내려가는 신립장군을 상상도 해보았습니다만 지금은 충주댐 담수로 깊고 시퍼런 강물이 아래로 펼쳐 있어 아찔하기만 합니다.
탄금대는 부여의 낙화암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줄기를 끼고 들어선 아담한 산세와 열두대와 같은 비운의 역사현장이라는 점이 같습니다..
열두대를 올라와 내리막길로 발을 디디면 대흥사와 그 옆으로 신립장군 순절비가 있습니다.
남한강가로 다가서면 우륵이 제자들을 교습시키다가 피로를 풀기 위한 쉼터로 전해지는 금휴포가 나옵니다. 강을 오가는 배 나루터이나 지금은 흔적도 없고 음식점이 들어서 있습니다.
대흥사를 뒤로 하고 언덕을 올라서면 궁도장이 나오며 위로 야외음악당과 문화원이 있는 출발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충주시내에서..

탄금대는 충주시 서편 칠금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3번국도를 따라 충주시로 들어오다보면 철길을 넘어가는 고가도로 밑으로 충주시가 펼쳐지면서 사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우회전을 하시고 충주역을 거쳐 바로 앞에 첫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시면 칠금동으로 들어서게 됨과 동시에 탄금대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또한 중앙탑공원과 중원고구려비 유적자를 방문하실 수 있으며 장호원을 거쳐 서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