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향교(忠州鄕校) 1629년(인조 7) 현 위치로 이건.
1897년(고종 34) 교궁(校宮) 중수.
1936년 명륜당 신축 및 대성전과 동무·서무 중수.
충주향교는 1398년(태조 7) 계명산(鷄鳴山) 아래에 창건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을 때, 참판공(參判公) 석감(石鑑)과 판결사(判決事) 석천수(石天壽)가 위패(位牌)를 계명산으로 옮겨 병화(兵火)를 피하였다고 한다.
석감과 석천수는 향교 정문 앞의 숙종 연간에 건립된 쌍성사(雙聖祠)에 배향되어 있다.
1629년(인조 7)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897년(고종 34)에 교궁(校宮)을 중수하였다.
1936년 군수 김석영(金錫永)이 명륜당을 신축하고 대성전과 동무·서무를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서무·동재·서재·치사재(治事齋)·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향교의 배치는 내삼문을 중심으로 전면 낮은 곳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후면 높은 곳에 문묘(文廟)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양무가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구조로 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좌우에 동무와 서무가 있다.
동무와 서무는 맞배지붕 건물이며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5칸·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동재와 서재는 기숙사이며, 외삼문은 소슬삼문으로 되어 있다.
이 향교는 조선시대에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게 되었다.
현재 대성전에 5성(五聖)·송조4현(宋朝四賢)을 배향하고, 동무와 서무에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있다.
1976년부터 명륜학원을 운영하여 한문·서예·경전 등을가르치고 있으며, 매년 춘계 석전 때 충주시 중원군의 효자(孝子)와 효부(孝婦)를 표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