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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강공 이상급 신도비(주덕)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2. 2. 18. 11:31

충강공 이상급 신도비(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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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가까이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강공 이상급(1571∼1637) 선생을 기리고 있다.

충강공 이상급(1571∼1637)의 자< 字 >는 사언< 思彦 >, 호< 號 >는 습재< 習齋 >로서 조선< 朝鮮 > 인조< 仁祖 >때의 문신< 文臣 >이다. 선조< 宣祖 > 39년(1606) 문과< 文科 >에 급제한 후 형조좌랑< 刑曹佐郎 >, 평안도도사< 平安道都事 >를 역임하였다. 그후 이이첨< 李爾瞻 >과의 불화< 不和 >로 형 상길< 尙吉 >(인조 때 공조판서< 工曹判書 >)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충주< 忠州 >로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후진들의 교육에 힘썼다. 인조반정< 仁祖反正 > 후 다시 단천군수< 端川郡守 >, 연안부사< 延安府使 >를 역임한 후 병조참지< 兵曹參知 >가 되어 군사< 軍事 >와 성곽< 城郭 >을 정비하는 등 군비확장< 軍備擴張 >에 힘을 기울였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丙子胡亂 >이 일어나자 남한산성< 南漢山城 >에 인조를 호종< 扈從 >했으며 강화< 講和 > 후 강화도< 江華島 >로 묘사< 廟社 >를 모시고 간 형을 찾아 가던 도중 적병에게 피살되었다. 후에 이조판서< 吏曹判書 >로 추증< 追贈 >되고 순조< 純祖 >때에 충강공의 시호< 諡號 >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