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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렬사'를 소개 합니다.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2. 2. 24. 11:03

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 '충렬사'를 소개 합니다. 

[ '연꽃'처럼 충절의 지조를 지키며 살다간 한 대장부에 삶의 기품을 느끼다.. ] 

휴일을 이용하여 단호사 맞은편에 자리잡은 임충민공 충렬사를 찾았다. 우리 애들 어릴 적에 유모차에 태우고 방문하였던 옛 추억도 떠오르면서 간만에 찾은 충렬사이다.

 

사적 제189호로 1969년 11월21일 지정되었으며 충북 충주시 단월동 385-1에 있는 사당으로 충민공 임경업 장군을 배향하고 있다. 충민공 임경업(1594∼1646)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유물관을 둘려보고 '충렬사비'를 보려는데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보였다. 아주 반가웠다.

 

봄방학을 맞아 자녀들과 함께 둘려볼 장소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유물관에서는 무엇보다 추련도의 한시가 가슴을 뭉쿨하게 한다.

 

임경업 장군의 호신용 칼이었다고 전해지는 '추련도'에는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다.

 

시호시래부재래(時呼時來否再來) 때여, 때는 다시 오지 않나니,

일생일사도재연(一生一死都在筵)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도다.

평생장부보국심(平生丈夫報國心) 장부 한평생 혈맹(나라)에 바친 마음,

삼척추련마십년(三尺秋蓮磨十年) 석 자 '추련도'를 십 년 동안 갈고 갈았도다.

 

 

추련(秋蓮)이란 '가을 연꽃'으로 다른 연꽃이 피지 않을 때 의연하게 피는 꽃이라고 한다. 그만큼 홀로 묵묵히 지조를 지키는 충절된 마음을 보여준다.

 

임경업장군은 위의 '추련도' 싯구처럼 충절을 지킨 삶을 사셨다. 조선 인조때 이괄의 남에서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때 명나라를 도와 청나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김자겸의 모함으로 세상을 달리하셨다고 한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단월삼거리에서 15분거리에 위치 하였고 문화해설사가 근무하고 있어 상세한 설명도 들을 수 있는 임충민공 충렬사.

 

 

 

어느덧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꽃망울이 두툼한 이곳에서 가을 연꽃처럼 충절의 지조를 지키며 살다간 한 대장부의 삶의 기품을 느껴 보시길....

 

 

 

 

 

 

 

 

 

 

 

 

 

 

 

 

 

 

 

 

 

 

 

 

 

 

 

 

 

 

 

 

위의 블로그 글과 사진 / 충주시 블로그 기자단 '이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