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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중원(中原)의 명승과 역사 유적을 찾아 떠난 여행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0. 11. 12. 13:50

 

대륙 중원(中原)의 명승과 역사 유적을 찾아 떠난 여행
       - 제천, 충주, 괴산, 영주, 순흥, 풍기, 단양



    
                                                  - 도담 삼봉 -


                   * 여행 일정 *

  1일 : 충북 제천 탁사정, 의림지-청풍 문화단지-충주 탄금대-수안보(1박)
  2일 : 괴산 연풍성지-안동 하회마을-영주 소수서원, 부석사-풍기온천-단양(1박)
  3일 : 단양 온달산성, 온달동굴-도담삼봉 -선암계곡, 사인암-서울 귀경)  

  
  
밤늦도록 눈보라가 날려서 아침의 도로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정된 코스에 따라 진행하기로 하고 길을 떠났다. 고속도로에서 바라보는 눈 덮인 겨울산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의 여행을 축하해 주는 듯했고, 그래서 우리의 기분은 한결 들떠 있었다. 더구나 모처럼의 부부동반 여행이라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바깥 세상의 눈꽃을 감상하며 차안에서 웃음꽃을 피우는 동안 차는 중앙고속도로 신림 IC를 내려서서 제천 탁사정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황량한 겨울 탁사정

  
                                                   - 탁사정에 오르는 언덕길 -

  탁사정은 중앙선 열차가 지나는 구학역에서 1㎞ 지점 5번 국도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빠져 나와 이번 여행의 첫 방문지인 탁사정을 찾았다.
  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탁사정은 옛날 갓끈을 씻었다는 곳에 걸맞을 옛 정취는 사라진 채 여관과 상점들의 간판만이 요란스럽다. 나는 40여년 전 제천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 곳으로 두 번이나 소풍을 온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탁사정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굽이치는 맑은 물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관리가 허술하고 경관을 가꾸지 않은 탓에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밟으며 탁사정 여관 옆 돌길을 헤치고 올라가니,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백사장의 맑은 물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계곡은 눈이 덮여 있어 여름철의 그 장대한 물소리는 들을 수 없고, 계곡은 얼어붙어 있었다.
  주변에는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시절 천주교도들이 생활하던 베론 성지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신학교가 세워진 곳이며, 1849년부터 최양업 신부(충남 청양군 화성면 출생)가 선교 활동을 벌이다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또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이 곳에 피신해 와서 '황사영 백서'를 만들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농경 문화의 요람 의림지(義林池)

  
                                                 - 의림지 표석 -

  의림지는 제천 시내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4㎞ 지점의 가까운 곳에 있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삼한 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 주변 둘레가 2㎞. 농경문화의 발상지인 의림지는 역사가 깊은 곳으로, 처음에는 '임지'라고 했다고 한다. 호수 주변에는 영호정과 경호루가 있어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수백 년 자란 노송과 수양버들의 가지는 의림지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으며, 만수기인 여름철에는 의림지에서 쏟아내는 물줄기가 30m의 장대한 폭포를 이루어 풍치를 더해 주고 있다.
  잘 닦인 호수 주변도로는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고,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다리를 건너면 활쏘기 등의 체험학습장, 북쪽으로 의림지 파크랜드가 있어 아이들의 소풍지로서 제격이며,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다.
  특히 의림지는 순채(수초)와 몸길이 10㎝ 안팎의 1년생 물고기 빙어(氷魚, 일명 공어)의 서식지로 유명하여, 수면에 모습을 나타내는 2월 무렵이면 얼음낚시를 즐기려는 강태공들로 붐빈다. 이 때 빙어회를 맛보기 위하여 찾아오는 이들이 많으나, 공급이 달려 아쉽게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의림지를 돌아보고 나서 제천의 맛을 찾아 향토음식점 제1호로 지정된 '아리랑 토면'집(중앙로 2가, 043-647-8658)을 찾았다. 여기서 녹두전과 토리면을 먹어보고 나서야 각 TV에서 앞다투어 방영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눈 덮인 의림지(노송이 우거져 있다) -


충주호와 산세 어울린 청풍 문화단지

  
                                                       - 팔영루 -

   제천읍에서 지방도로(597번)를 타고 12㎞ 남짓 거리의 금성을 지나면 푸른 물로 가득한 충주호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청풍 문화단지까지의 구불구불 이어지는 9㎞ 구간은 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신선의 멋을 느끼며 달리는 환상의 드라이브길이다. 태조 왕건의 촬영장을 지나면 청풍리조트 앞으로 만남의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인공 암벽장, 번지점프장이 있고, 청풍호반에선 동양 최고, 세계 2위 높이(162미터)로 그 웅장함을 과시하는 호반 수경분수가 있다. 이곳을 지나 청풍대교를 건너면 '작은 민속촌'인 청풍문화재단지에 이른다.    
  제천시에 속해 있는 청풍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하여 삼국 시대부터 수운이 크게 발달한 곳으로 문물이 번성하여 고려 충숙왕 때에는 군(郡)으로, 조선 현종 때에는 도호부로 승격되는 등 역사문화의 뿌리가 깊은 고장으로 많은 문화 유적이 소중히 간직되어 왔던 곳이다.
  그러나 1978년부터 시작된 충주댐 건설로 청풍명월의 고장 청풍이 옛날의 화려한 이름만을 전설처럼 남긴 채 물에 잠기게 되자 이를 원형대로 보존코자 충주호를 굽어보는 호수의 산마루, 망월산성 기슭에 문화재 단지를 조성하고, 82년부터 3년간에 걸쳐 각종 문화재를 현 위치에 이전 복원하였다.
  뒤로는 적성산(일명 까치성산)과 금수산 수려한 산줄기의 정기가 서려 있고, 앞으로는 호수와 어울려 있어 글자 그대로 '청풍(淸風)'의 멋을 잘 간직하고 있다. 푸른 호수의 물을 가르며 청풍의 비경을 감상하는 멋이야말로 신선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총 85,000평의 부지 위에 보물 2점(한벽루, 청풍석조여래입상)을 비롯하여 지방 유형문화재 9점(금남루, 팔영루, 응청각, 금병현, 청풍 향교와 각종 민속 가옥 4동과 지석묘 5점, 문인석 6점, 비석류 31점 등 총 53점을 균형 있게 배치하였으며, 고가(古家) 4동과 유물 전시관에는 연자방아를 비롯한 생활 유물 1천 6백여 점의 옛 문화재가 전시되어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육각정을 지나 산기슭을 따라 망월산성 정상 망월루까지 약 500미터 내외의 오르막길은 가벼운 등산 코스로 최적지이며, 정상의 전망대인 망월루에 올라서면 청풍 호반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 망월산성과 망월루 -

가야금 소리 슬피 울렸던 탄금대

  지방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있는 탄금대는 본래 대문산이라 불리던 산이었다.  그런데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에서 망명해온 우륵(于勒) 선생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탄주(嘆奏)하였다 하여 탄금대로 불리게 되었다.
  충주 서북쪽 3㎞ 지점 남한강과 충주의 달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적과 격전을 벌였던 전적지로서 신립의 장대한 순절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 이 곳은 이래저래 민족의 한(恨)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디선가 가야금소리가 가늘게 퍼져 흐르는 것만 같다.          
  탄금대에 오르는 오솔길은 울창한 송림과 봄의 벚꽃이 빼어나며 남한강 쪽은 기암절벽이 있어 운치가 좋고, 현재 경내에는 신립 장군 순절비, 악성 우륵 선생 추모비, 탄금대비, 권태웅 시인의 감자꽃 노래비,  탄금정, 충혼탑, 야외음악당 등이 들어서 있어 충주 시민 뿐 아니라 국민휴양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역사 깊은 수안보(水安堡) 온천

  충주에서 21㎞ 거리에 있는 수안보 온천은 개발의 역사로 볼 때 다른 곳보다 역사가 깊어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곳이다. 수온 53도, 산도 8.3 정도의 약 알카리성으로 라듐, 유황 등을 다소 함유하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무미 무취(無味無臭)하며, 매우 미끄러운 특성이 있다. 피부병, 신경통, 부인병, 위장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한 동안 중부권에 사는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수안보권에는 충주호, 탄금대, 미륵사지, 물탕공원, 월악산, 조령관문 등 관광 자원이 풍부하여 수안보만큼 관광 조건이 잘 갖춰진 곳도 드물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수안보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다소 줄어들었다. 전국 각지에 온천이 개발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 수안보를 찾는 사람들에 대한 수안보의 인심이 그리 좋지 않다고 알려지면서 어느 날 갑자기 수안보를 찾는 발길이 뜸해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레저 시설과 스키장이 들어선 뒤부터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또 '향나무식당'(043-846-2813)의 음식맛과 주인할머니의 인심은 넉넉하기 그지없어 수안보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이 음식점을 찾고 있다. 우리는 이 곳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수안보 한화리조트에서 여행의 첫 밤을 편안하게 지냈다.


  연풍(延豊) 천주교 순교성지

  
                                              -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

  누룽지를 싸주는 향나무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우린 둘째 날의 여정을 위해 서둘러 떠났다. 추운 날씨 탓인지 가로수들은 가지마다 눈꽃이 피어 있다. 눈이 내린 쌓인 것을 '눈꽃'이라 한다면, 이것은 분명 '얼음꽃'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동행자의 지론에 화답하는 동안  수안보에서 12㎞ 떨어진 연풍 성지에 도착했다.
  연풍은 1801년 경기, 서울을 중심으로 일어난 천주교 대박해를 피하여 충청도와 경상도로 은거처를 찾아 나선 교우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점촌, 상주, 진보, 청송 등으로 난을 피해 가는 요로가 되었다. 그래서 연풍은 교회 초기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천주교 초기부터 신앙의 요람지로 황석두 루가 성인과 많은 순교들을 낳은 산실이며, 진리를 증거한 많은 순교자를 처형시킨 형장이기도 하다. 성지 안에는 교회를 비롯하여 황석두 루가 성인의 묘와 옛 형방 건물, 사형을 집행한 구멍난 형구돌, 그리고 비교적 넓은 면적의 정원에는 대형 십자가 형틀에 매달린 예수상과 성모 마리아상이 있어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성모 마리아 상(하얀 색깔이 눈과 조화를 이루었다) -        


  안동 선비의 고장 하회(河回)마을과 하회탈    

    
                                                - 마을 입구에 세워 둔 장승 -

  연풍 성지를 돌아보고 우리 일행은 차를 몰아 안동을 향했다. 전에는 이화령 고개를 넘어야 하는 불편을 새로 뚫린 터널이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고갯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며 조망하는 멋은 간 곳이 없다. 작년 좋은벗님네 여행팀에서 문경새재의 삼관문과 태조 왕건의 촬영장을 답사한 적이 있어 이번 여행에는 일정에 넣지 않았으므로, 오랜 동안 차를 몰아 안동 하회마을에 도착하였다.
  입장권을 내고 들어서니 제일 먼저 장승의 무리와 하회탈이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마을 초입에서 향토문화 해설사로부터 하회 마을의 연혁과 약도, 관람 순서 등 안내를 받았다.
  하회는 낙동강이 태극 모양으로 돌아 흐른다 하여 하회(河回), 혹은 물도리동이라 하여 풍수지리상 태극형(太極形), 연화부수형에 속하는 길지(吉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려 말, 조선 초 공조전서를 지낸 류종혜(柳從惠) 선생이 이 곳 하회마을에 터를 잡은 후 풍산 류씨가 600여년 간 세거(世居)해 온 양반 집성촌으로, 상류층의 웅대한 기와집으로부터 민가의 초가 토담집에 이르기까지 전통고가와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지리적 여건으로 외침을 한번도 겪지 않아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다.
  더구나 이 곳 하회마을 유씨 문중에서 조선조 유학자 겸암 류운용 선생과 임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서애 류성룡 선생 등 출중한 인물들을 배출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이 마을에는 류운용파의 종가댁인 양진당(보물 306호)과 서애의 맏손자 졸재 류원지가 지은 류성룡파 종가댁인 충효당(보물414호)과 영모각이 있다.

    
                                              - '충효당'이란 현판이 보인다 -

영모각에는 서애 류성룡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 전시된 유물 중에는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징비록(懲毖錄)'이 있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영의정에서 물러난 후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저술한 임진왜란 친필 회고록이다. '징비(懲毖)'란 '지난 날을 경계하고 앞날을 삼간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에서 따온 말이다. 또 이곳에는 북촌댁, 남촌댁, 원지정사, 빈영정사, 옥연정사, 작천고택, 주일재 등의 기와집 전통가옥이 있다.  
  또 하회마을은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하다. 오리나무로 조각한 하회탈을 쓰고 조선시대의 철저한 양반 계급사회에 살던 하회와 병산마을 농민들이 무위도식하는 양반과 선비를 비꼬는 해학적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하회탈은 제작기법상 고려시대 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탈이다. 원래는 13종 14점이나 3점(총각, 떡달이, 별채)이 분실되어 현재 10종 11점이 남아 있다. 현재 국보 제12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판매를 위해 탈방에 걸어놓은 탈들 -

  하회마을에서는 매년 10월 셋째일요일을 정하여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이 곳 하회탈박물관에는 하회탈과 세계의 탈을 전시하고 있으며, 옛 탈을 그대로 재현해 파는 하회동탈방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마을을 둘러본 우리는 우측으로 낙동강 물이 태극모양으로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둑을 따라 걸었다. 강 건너편 숲 속으로 아담한 상봉정, 겸암정사가 앉아 있고, 이름하여 부용대라 불리는 기암절벽이 맑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멋스러움을 뽐내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통 문화가 멋지게 어울린 곳, 그래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가 한국의 멋을 찾아 이곳을 방문했을까? 하회 마을 입구 기념관에는 당시의 방문기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 물길 -


최초의 사립고등교육기관 소수서원(紹修書院)
      

  
                                              - 소수서원 입구 -

  하회 마을을 관람한 후 우리는 서둘러 영주시 순흥면으로 달려가 전통묵밥집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묵밥은 순 메밀묵을 채로 썰어 국물에 만 묵 한 사발에 조를 섞어 만든 공기밥을 함께 내놓는 집이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소수서원을 찾았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이 고려말의 유현(儒賢)인 안향(安珦) 선생의 연고지에다 중종 37년 (1542) 사묘(祠廟)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그 다음해에 학사를 건립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데서 비롯되었다. 그 후 명종 5년(1550)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소수서원이란 사액(賜額)을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립고등교육기관이 되었다. 이 곳에 주향(主享)된 회헌(晦軒) 안향(1243-1306) 선생은 도첨의 중찬(都僉議 中贊) 등을 거치면서 문교 진흥에 진력한 우리 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다.

  
                                                   - 서원 안뜰 -

  경내에는 국보 제111호인 회헌 영정과 보물 3점, 도 유향문화재 1점을 비롯한 유물, 전적 등이 소장되어 있을 뿐 아니라, 1993년도에 건립한 충효교육관과 사료전시관이 있어 유교문화의 도장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좌측동산에는 울창한 노송이 서원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서원 우측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이어져 있다.  


  최고(最古) 목조건물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浮石寺)

    
                                                     - 부석사(뒷 건물이 무량수전) -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소재한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국사(義湘國師)께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이다. 그러나 일반에게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의 하나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절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16년 대대적인 보수를 위해 해체할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禑王)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에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 한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 좌상(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255호) 등이 있고, 고려 시대 유물로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을 비롯하여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고려 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및 2기의 삼층석탑 등이 있다.

  
                                               - 부석사 안의 당간지주 -

  특히 이 절은 산 중턱 서향으로 자리잡은 관계로 툭 트여진 전망으로 하여, 이 곳에서 멀리 가까이 포개진 산봉(山峰)과 그 뒤로 기우는 낙조를 조망하는 것은 가히 일품이다.
  영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풍기온천에서 하루의 피곤을 씻어 내고 단양으로 이동하여 대명콘도에 여장을 풀었다. 이 날 밤 숙소에서 벌인 윷놀이의 열기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바보 온달로 유명한 온달산성과 온달동굴
  
                                                   
                                                            - 온달산성에 오르는 돌계단 -

  단양은 한국 8대 명승지로 꼽힐 만큼  발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다. 단양 8경 외에도 제2의 단양팔경이 있고,  최근에는 옛 단양읍이 충주호에 잠기고 새 읍이 건설되면서 신단양팔경까지 생겨나 팔경이 셋이나 되는 셈이다.
  경승지 외에도 이곳 단양에는 고수동굴, 노동동굴, 천동동굴, 온달동굴 등 모두 4개의 동굴이 있다. 이들 동굴은 모두 풍부한 침식봉의 발달과 갖가지 모양의 종유석, 석순이 잘 발달되어 지하궁전을 방불케 하는 곳이다.
  우리는 이들을 다 둘러볼 수 없어 그 중 몇 개를 선별하여 보기로 하고, 첫 번째로 단양군 영춘면 하리에 있는 온달산성의 유적지를 찾았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전설로 유명한 온달산성은 삼국시대의 석성(石城)으로 삼국의 영토 확장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에 고구려와 신라간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장군이 신라군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성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해발 427m의 산등성이에 높이 6∼7m, 폭 3∼5m로 682m 길이로 축성된 이 성에 올라서면 주변의 산세를 다 조망할 수 있어 군사 요충지로서의 최적지라는 판단이 서게 된다.  그러나 온달장군은 신라병과의 격전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신라의 증원군이 도착하자, 양곡이 부족한데다 중과부족이라 크게 패하고 말았다고 한다. 산성 주위에는 잡초와 억새가 우거져 이름 모를 산새들이 산성의 축성과 관련된 전설을 얘기하는 듯 가지에서 가지로 넘나들며 지저귀고 있다.

        
                                                    - 온달동굴 입구 -

  온달동굴(사적 제24호)은 산성 기슭의 지하에 있는 석회암 동굴로서 4억 5천만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굴 내부는 석회암층 담백색 종유석과 석순 등이 잘 발달되어 웅장하며, 동굴의 진입로는 수평을 이루고, 군데군데 진입로가 낮아 납작 엎드리지 않으면 머리를 다칠 위험이 있어 머리 보호용 헬멧을 착용하고 진입하게 되어 있다.  동굴의 총 길이는 800m로 주선과 지선을 이루고 1, 2, 3층으로 구분되어 아기자기한 석순이 많고 지하 수량이 풍부하여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 온달관광지에는 온달관이 있어 온달의 일생, 온달전시관, 생활관, 고분관, 인물관, 문화체험관, 정보관 등으로 나누어진 전시실이 있다.
온달관광지 주변에는 경치가 빼어난 남천계곡, 북벽, 소백산, 천태종의 총본산인 구인사 등 천헤의 관광 자원이 산재되어 있다.      

  
  단양 팔경의 제1경 도담삼봉과 석문

      
                                               - 강물 위에 뜬 도담 삼봉 -

  온달유적지를 돌아 나와 우리가 찾은 곳은 도담삼봉이다. 한반도 강 풍경 중에 제 1경으로 치는 도담삼봉은 남한강의 말고 푸른 물 속에 우뚝 선 채 세 개의 봉우리가 마치 그림처럼 떠 있다.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양쪽에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질투심을 갖고 돌아앉은 처봉(아들봉)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장군봉(남편봉)에는 앙증맞게 정자가 앉아 있다.
  단양을 사랑했던 정도전(鄭道傳)은 자신의 호 삼봉(三峰)을 이 봉우리에서 따왔다. 이 아름다운 도담삼봉을 중심으로 12㎞ 주위에 포진해 있는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이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명성을 날리던 단양팔경이다.  

                                                           
                                                             - 석문(산 쪽에서 도담삼봉을 배경으로 하여) -


  석문은 도담삼봉 상류 200m 지점 좌측에 수백척 되는 석주가 떠 받쳤는데 그 굽어진 모양이 무지개 모양이며, 좌측 하단에 작은 굴이 있어 신비롭고 마치 신선들이 드나들었음직하다. 유람선을 타고 강을 따라 유람하며 감상하기에 좋으며, 반대로 주차장 쪽에서 계단을 통해 산에 올라 강 쪽을 배경으로 뚫린 구멍을 감상하는 멋 또한 일품이다.  
  이와 함께 거북모양의 바위봉우리와 바닥에 거북의 등무늬가 있는 담이 함께 어우러진 구담봉, 대나무 순 여러 개를 묶어 세워놓은 듯한 옥순봉, 남조천의 운선구곡을 운치 있게 장식하는 사인암 등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절경들이며, 삼선구곡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중·하선암은 바위를 씻어 내리는 물길이 신선의 경지를 자아내는 것들인데, 시간의 제약으로 둘러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단양에서의 마지막 식사

  
                                                  - 장다리식당의 애프타이저 -

  우리는 예정된 일정을 마치고 점심을 들기로 하였다. 경관이 아름다운 단양이라면, 이름에 어울리는 맛집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 곳 지인(知人)에게 물어 안내를 받은 곳이 '장다리식당'(043-423-3960)이었다.
이 식당 주방장은 향토음식기능보유자로서 이미 향토음식 경진대회에서 여러 차례 대상을 수상한 경력자였다. 그리고 충북의 '우수모범업소'로 지정을 받은 곳이었다.
  그런 까닭인지 여기서 내놓은 음식은 남달랐다. 육쪽마늘의 고장답게 마늘을 자료로 한 여러 가지 반찬이며, 모든 반찬이 향토적인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돌솥밥 맛도 구수했다. 옛날 임금님의 수라상이 이만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행복한 느낌이 왔다.
  즐거운 여행에 포만감까지 더해져 우리의 이번 여행은 '행복 만점'으로 대미를 장식했다고나 할까. '좋은벗님네'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