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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의명성과 문화가 살아있는 충주관아공원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4. 7. 14. 16:54

충주의명성과 문화가 살아있는 충주관아공원

역사와문화의 산실 관아공원에서 아름다운추억을

 

 

오늘은 역사와 문화의 산실 관아공원을 소개하려 한다.

충주관아공원은 조선시대 충주목사가 충주를다스리던 관아자리로서

 역사와문화를 상기시키며 시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식공원 이다.

 

충주에는 조선시대 충주목의 관아(官衙)가 남아있는데,

그 건물들을 최근(1983년)까지 중원군청청사 일부로 사용하였던 것을

그 일대를 정비하여 관아공원(一名 中央公園 중앙공원)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주변에는 거수목(巨樹木)이 있어 고색이 창연한 관아건물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관아건물로는 동헌(東軒)으로 쓰던 청녕헌(淸寧軒)과 내아(內衙)로 쓰던 제금당(製錦堂).

그리고 산고수청각(山高水淸閣) 솟을삼문이 잘 남아있다. 

청녕헌은 지방문화재 제66호로 지정·보호받고 있는데

조병로 목사(趙秉老牧使)가 고종 7년(1870) 8월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 해 10월에 중건하였다.

 

건물구조는 전면 7칸, 측면 3칸 목조와가 팔작집인데,

기와에 명문이 있어서 민간의 사찰(蒼龍寺로 추정)을 헐어다가 지었음을 입증한다.

 

청녕헌이란 당호는 '天得以淸, 地得以寧'이란 글에서 인용한 것 같다.

장중한 맛이 한국의 건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제금당은 지방문화재 제67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데, 내아(內衙)로 쓰던 건물이다.

청녕헌과 함께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병로 목사가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구조는 정면 6칸 반, 측면 2칸 팔각지붕인데 지방관아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단청(丹靑)이 되어 있다.

1983년 대수선을 하면서 발견된 단청문양을 그대로 복원하였다.

 

그리고 제금당이란 당호로 보아, 백성들에게 길쌈을 권장하는 뜻이 내포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또한 산고수청각과 내삼문도 관아에 부속된 건물들로

충주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역사공부의 현장으로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다.

충주축성 사적비는 중앙공원을 찾아가도 흔히 지나치기 쉬운 유물이다.

 

지방문화재 제68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이 비는, 고종 6년(1869년)에 충주성을 축성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당시의 조병로 목사가 건립한 비인데

충주읍성의 규모와 문루(門樓)의 규모를 짐작 하게 하는 비이다.

 

성을 증축 할 때 참여한 인원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좌수 조광수외 65명의 명단이 기록 되어 있다.

 

관아공원의 주요시설은 청녕헌/ 제금당/ 충주축성 사적비/ 충청감영외문루 를 들수있으며

연륜이 엿보이는 거목과 수목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이으며

충주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바라보고 배우는 역사의 장이 되고 있다. 

 

 

 

 

 관아공원 관문앞 입구에는 관아공원 표지석이 서있어 공원을 알려 준다.

 충청감영문인데요  문옆에는 관아공원을 알리는표지석이 있다.

충청감영문은 2충 누각으로 꾸며 젔으며 공원을 복원하면서 신설된 것으로 보인다.

충청감영문의 안쪽 현판에는 중원루 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관아공원을 들어서면 충주읍성의 내역을 알리는 비문석이 있습니다.  

 

청녕헌인데 이는 조선시대 충주 목사가 충주를 다스리던 관앙의 동헌이다.

이 청녕헌은 전면이 7칸, 측면이 4칸인 목조 8작 기와집으로

고종 7년(1870) 8월에 화재로 인하여 동헌이 소실되자

같은해 윤10월에 다시 목사였던 조병로가 창룡사를 헐어다 옮겨 세운 건물이다.

 

청녕헌에는 당시 목사가 다스리던 모습을 재연한 인형들이 있는데

이곳에 와보면 마치 옛 관헌에와 있는 착각을 하게 된다.

충주목사의 위풍당당하게 앉자있는 모습에서 위험이 느껴진다. 

 예성별관으로 불리우는 이문은 제금당 출입문인 외삼문 이다.

 

 

제금당은 청녕헌의 별관 건물로서 숙소로 사용되었다.

전면 7칸, 측면 3칸으로 중건된 이 제금당은 중앙 2칸 통간을 우물마루의 대청으로 하였고,

대청 우측 2칸은 온돌방과 마루방으로 대청 좌측 3칸은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각각 만들었는데 전면에는 모두 반칸씩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제금당 후면의 모습을 담은 장면 이다.

 

산고수청각 인데요 이건물은 조선후기 관아에서식사등을 준비하던 수직청건물로

제금당에 묵었던 손님의 접대를위한 건물로 보인다.

앞면 4칸의 크지않은 건물로 방과 부억이 있다.

 

동쪽 출입문 이다.

충주목 관아에서도 구함말 천주교 신자들의 심문이있었던것으로 

이를 기념하기위한 비문이 세워저 있다. 

 

이 비는 고종6년(1869년) 충주읍성을 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충주목사 조병로가 동헌 앞에 건립 한 것이다.

비의 받침은 화강암으로 만들고 길이 56cm72cm,너비, 높이 12cm이다.

비신은 역시 화강암이고 전면 좌횡으로『축성사적비』라 쓰고

축성년대와 성의 크기 문루의 크기를 썼다.

뒷면과 좌측면에는 축성과 관계된 사람의 명단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비신의 크기는 높이 138cm 너비 52cm 두께 30cm 이다.
 

 

관아공원마당 서편에는 수령500년이 넘는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데요. 

 

이 느티나무 는 보호수로 지정되어있으며 나무앞에는 표지석이 있다.

 

 

이 보호수인 느티나무는 가까히가서 볼때 그나무크기와 들레등

수령을 짐작해 볼수 있다.

 

 이 나무는 관아 동편이있는 고목으로 모양으로도 수령을 짐작할수 있다. 

 

 

관아공원은 청령헌과 제금당등 구한말 관아었을뿐만 아니라

큰 고목이 있어 웅장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옛역사를 공부하기위한 현장 학습장으로

시민들의 쉼터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충주시에서는 2013년 부터 충청감영문화제를 신설하여

충청관찰사 추모제를 지내고 있으며

충청감찰사행렬등 문화제를 실시하여

충주감영의 옛문화와 역사를 그리는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