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축제가 열리는 영동을 찾아 영동의 혼을보다.
충북 영동을 찾은 것은 제1회 대한민국 와인축제를 보기 위해서다. 와인축제는 11월 5일부터 7일까지 영동군 영동읍 일원에서 열렸다. 축제의 주행사장은 읍내에 있는 영동체육관이고, 부행사장는 영동대학교와 와인코리아다. 우리 일행은 오전에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있는 난계국악박물관과 난계국악기제작촌을 보고, 오후에 와인축제장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난계국악박물관이 서울 방향에서 영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고, 난계 박연이 영동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와인축제의 주행사장을 방문, 시음도 하고 체험도 할 예정이다. 영동대학교에서는 하루 종일 학술세미나와 워크숍이 열리지만, 난계 박연선생을 만나는 일과 와인 시음 그리고 와인 체험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다.
와인코리아는 영동군 포도재배 농민 600여 명이 주주가 되어 만든 농업회사 법인이다. 이곳에 가서는 공장 견학 및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해마다 9월 초면 영동에서는 포도축제가 열린다. 금년에도 9월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영동 포도축제가 열렸다. 포도 따기, 포도 밟기, 나만의 와인 만들기 등 체험 위주로 축제행사가 진행된 바 있다.
난계 박연을 찾아가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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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난계국악박물관에 들른다. 난계 박연(朴堧: 1378-1458)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악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이곳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나 생원과 진사를 한 후, 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올랐다. 집현전 교리를 시작으로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그가 음악과 연을 맺은 것은 세종대왕 때로 관습도감 제조가 되면서부터다.
그는 이때부터 궁중음악을 정리하고 음악이론을 정립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음악관과 음악이론은 후손인 박심학이 간행한 <난계유고>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책은 난계가 악률에 관해 올린 39편의 상소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2/3가 1430년(세종 12년) 에 올린 소(疏)다. 그 내용을 보면 난계 박연은 중국계 아악을 정리했을 뿐만아니라, 제례아악을 제정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그가 이룩한 음악적 업적은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가 앞에서 언급한 궁중음악의 정리다. 당시에 연주되던 향악을 멀리하고 중국계 아악을 정리하여 제향음악(祭享音樂)으로 삼았다. 사실 이것은 업적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전통향악에 대한 홀대이다. 박연이 보수적이고 사대적이었다면, 세종대왕은 오히려 더 민족적이고 진보적이었다. 다음은 박연과 나눈 세종의 대화이다.
"아악은 본시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고, 중국 음악이다. 중국 사람이라면 평상시에 들어 익숙할 것이므로, 제사에 연주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서는 향악을 듣고, 죽어서 아악을 듣게 되면 어찌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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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가 음률의 정립이다. 중국의 악서를 토대로 우리 실정에 맞는 12율관을 만들었다. 정확한 음악을 만들려면 바른 소리를 내는 악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악기가 바른 소리를 내려면 정확히 조율되어야 하고, 정확한 조율을 위해서는 율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것이 12율관이다. 구리통을 사용하여 율관을 만들고 편경의 음에 따라 소리를 조율하였다.
세 번째가 악기 제작이다. 음률을 맞추기 위한 기본 악기로 편종과 편경을 만들고, 훈과 축 그리고 생황 같은 악기를 새로 제작하도록 했다. 또 북의 종류를 다양화해 건고, 뇌고, 영고 등을 제작하였다. 네 번째가 악가무와 관련된 시스템의 정립이다. 그는 일무(佾舞), 악기의 배치, 악공의 복식, 악보의 간행 등을 통해 악제를 정비했다. 음악과 관련된 그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난계 국악박물관 체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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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박물관에 들어가면 먼저 영상실에서 난계 박연 선생의 삶과 음악적인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왼쪽에 있는 난계실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난계실로 들어가기 전 이곳을 소개하는 안내자가 먼저 대금을 한 곡조 멋들어지게 분다. 그리고는 난계국악박물관의 역사와 구성, 전시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또 난계실로 들어가서는 국악의 유파에 대해 이야기하며 판소리 춘향가 중 쑥대머리 장면을 직접 불러준다.
"쑥대머리 귀신 형용, 적막 옥방의 찬 자리에..."로 이어지는 사설이다. 서편제 소리다. 그리고는 서편제와 대비되는 동편제 소리로 같은 대목을 불러 비교해 준다. 정말 훌륭한 안내다. 그 뿐만 아니다. 해금이 있는 곳으로 가서는 우리의 창부타령, 서양의 'Amazing Grace', 우리 가요 유정천리, 사(死)의 찬가 등을 연주하며 해금의 음악적 포용성을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음감만 있으면 국악기 중 가장 배우기 쉬운 것이 해금이라고 말한다.
난계실에는 난계 선생의 생애와 업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연표와 문서, 악기, 그림 등 관련 자료를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율관과 편경의 제작모형 등을 통해 당시 음악환경을 보여준다. 이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난계 부부 초상이다. 조선시대 초상화 중 부부가 함께 그려진 것은 유례가 없기 때문이다. 화상찬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이것은 난계 박문헌공의 초상이다. 이름은 연이고 자는 탄부이며 밀양인이다..."
난계실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국악실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수십종의 악기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악기는 8개의 부로 나누어진다. 금부(金部), 석부(石部), 사부(絲部), 죽부(竹部), 포부(匏部), 토부(土部), 혁부(革部), 목부(木部)가 그것이다.
금부는 말 그대로 금속으로 만든 악기다. 징과 꽹과리, 편종이 여기 속한다. 금속으로 만든 서양의 타악기다. 석부는 돌로 만든 악기다. 편경이 대표적이다. 사부는 실로 만든 현악기를 말한다. 거문고, 가야금, 해금, 아쟁, 비파, 공후 등이 여기 속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악기의 중심이 되는 것은 현악기다.
영동의 혼을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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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는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다. 피리, 소(簫), 금(笒)이 여기에 속하는데, 길이와 크기에 따라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 단소, 퉁소, 대금, 중금, 소금으로 세분화된다. 포부에는 생황이 있다.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길고 짧은 여러 개의 대나무관을 꽂아서 만든다. 국악기 중 유일한 화음악기이다.
토부는 도자기로 만드는 악기다. 훈과 부가 있는데 흔히 볼 수 없다. 혁부는 가죽으로 만든 북을 말한다. 크기에 따라 소고, 중고 용고가 있고, 모양에 따라 장고와 갈고가 있으며, 걸개가 있는 좌고, 응고, 삭고, 뇌고 등이 있다. 목부는 나무로 만드는 악기로 박, 축, 어가 있다. 목부 악기는 연주의 시작과 끝에 쓰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농악의 필수 악기인 태평소가 목부에 속하는 것이 좀 의아하다.
난계 국악기제작촌에서 가야금도 만들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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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박물관을 나오면 왼쪽으로 난계 국악기제작촌이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가야금 만들기 체험을 한다. 실제 가야금을 제대로 만들려면 몇 년이 걸린다. 나무를 건조하는 데만도 3~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로 40㎝ 세로 10㎝의 가야금 모형에 안족(雁足)을 설치하는 간단한 작업만을 한다. 줄까지 다 매어져 있어 안족을 줄 아래 끼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도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제대로 하려면 10분은 걸리는 것 같다.
가야금을 만들고 나자 조준석 대표가 나와 주로 현악기에 대해 설명한다. 먼저 가야금의 재질과 제작과정을 이야기한다. 가야금은 공명통과 안족(雁足) 그리고 현으로 이루어진다. 공명통은 오동나무로 된 전면과 밤나무로 된 배면을 붙여 만든다. 안족은 돌배나무로 만드는 게 좋은데 그 나무를 구하기 힘들어 최근에는 벚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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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자신이 제작하거나 개량한 현악기에 대해 설명한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가장 대중적인 악기를 제조할 뿐 아니라 시대에 맞게 개량도 한다고 말한다. 그가 개량한 대표적인 가야금이 15현 가야금이다. 서양 음계인 7음계를 응용해, 2옥타브 연주가 가능한 15개 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초중등학교의 국악시간에 연주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보급에 힘쓰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또 양이두 등 역사가 2000년도 넘는 고악기를 소개한다. 이들은 고고학적인 발굴이나 고분벽화 또는 공예품의 조각을 통해 우리와 만나게 된 악기이다. 그런데 조준석 대표가 이것을 복원했다는 것이다. 월평동 유적에서 발견된 양이두를 복원하고, 신창동 유적에서 발굴된 현악기를 복원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복원악기는 원시적인 장구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름을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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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이 제작한 해금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노무현 해금이라고 말한다. 그는 악기를 제작할 때 꼭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자신이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필요한 사람이나 단체에 주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악기를 전달하기 전에 죽어 지금까지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만간 봉하마을을 방문해 유물전시관에라도 전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이곳 난계 국악박물관을 방문하면서 느낀 게 있다. 음악박물관에는 정말 해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노래도 불러주고 악기도 연주해 주고 설명도 해주는 엔터테이너 가이드가 있어, 음악과 악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기를 제작하는 안내자가 나와 자신의 제작경험과 국악기의 우수성을 얘기해 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말이다. 공자가 말한 '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의 경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11월 5일부터 7일까지 충북 영동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와인축제'에 참가했다. 이때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토대로, 영동을 세가지 관점에서 기록하려고 한다. 인물, 축제 그리고 와니너리이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가 영동이 배출한 인물 난계 박연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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