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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북도청 이전 이유는 '경부선과 의병'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23. 12. 9. 16:02

일제강점기 충북도청 이전 이유는 '경부선과 의병'

입력2023.12.09. 오전 7:13 수정2023.12.09. 오전 7:14

충주학연구소 발간 '충주의 역사'에 소개

전홍식 소장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필요"

일제강점기 충북도청 이전이 경부선 부설과 의병 활동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사진은 1872년 한문으로 표기·제작된 충주목지도와 한글로 새로 제작한 충주목지도.(자료사진)2023.12.8/뉴스1

(충주=뉴스1) 윤원진 기자 = 일제강점기 충북도청 이전이 경부선 부설과 의병 활동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9일 충주문화원에 따르면 이런 내용은 충주학연구소가 지난 1일 발간한 충주문화총서 2집 '충주의 역사'에 실렸다.

전홍식 충주지역사회연구소 소장은 '일제강점기 충주읍성 철거와 식민지 도시공간의 변화'를 소개했다.

박 소장은 "수운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내륙 전통도시는 경부선 철도를 중심으로 한 급격한 공간재편 과정에서 상권이 위축하고 도시가 쇠퇴하는 비운을 겪게 됐다"고 전제했다.

일제는 효율적 식민지 침탈을 목적으로 경부선이 개통한 다음해인 1905년 8월 충북도청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자 충주 지역 농민과 상민, 관속 등 수천 명이 집단행동에 나섰고, 일제는 도청을 이전하지 않겠다고 말을 바꿨다.

도청 이전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08년 6월에 강제로 이뤄졌다. 경부선 중간역인 조치원역에서 가장 가까운 청주를 도청 이전 대상지로 정했다.

활발한 의병 활동도 도청 이전에 영향을 줬다. 을미의병부터 시작해 충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을사의병, 정미의병 전쟁은 일제의 수탈에 큰 부담이 됐다는 전 소장의 설명이다.

경부선 철도 부설과 도청 이전으로 청주는 충북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도시로 부상했다. 반면 충주는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혼란과 식민 지배 정책으로 도시가 쇠퇴하고 상업 기능이 위축했다.

통감부 시기부터 시작된 도청 이전은 병탄 이후에도 계속됐다. 1910년 경기도청이 수원에서 경성으로, 1920년 10월 함경북도 도청이 경성에서 나남으로, 1925년 12월 경상남도 도청이 진주에서 부산으로, 1932년 6월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했다.

전 소장은 "충주는 전통도시 중에서도 일제 식민 지배 정책으로 도시 위상이 크게 격하된 대표적 사례"라면서 "그 유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사학자인 전 소장은 한국교통대학교 대학원에서 '식민통치전략과 도시공간의 변화'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교통대 정책연구소 연구위원과 류자명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충주 3·1운동기념사업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충주시 도심 전경.(자료사진)/뉴스1

윤원진 기자 (blueseeki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