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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적지 충강공 이상급 신도비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0. 12. 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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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가까이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강공 이상급(1571∼1637) 선생을 기리고 있다.

 

 

 


문화유적
충강공 이상급 신도비
충강공 이상급 신도비
  • 시 대 : 조선시대
  • 유 형 : 기념비
  • 지 정 : 지방유형문화재
  • 지정번호 : 지방유형문화재 제 63 호
  • 지정일자 : 1980. 1. 9
  • 소재지 :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504

이 석비는 1714년(숙종 40)에 세워졌으며 글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 비의 받침돌은 8면인데 6면내는 연꽃을, 마주보는 두 면에는 동물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받침골 윗면은 큼직한 연꽃을 새겼고 그 위에 8각 기둥형의 비신을 세웠다.

이 비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비 몸체와 머리부분인 이수는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다.이수의 앞, 뒷면으로는 두마이리의 용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이 비는 8각형인 점에서 형태가 특이하고 조각수법이 뛰어난 예이다.

이상급(1571 ~ 1637)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학문에 힘써 34살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 문과에 합격한 후 승문원관리, 형조좌랑, 평안도사(종6품)를 거쳤으나 당시의 권세가들과 뜻이 맞지않아 승진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 벼슬을 버리고 농사와 낚시일로 소일하기도 하였지만 인조반정(1623년) 후 다시 등용되어 대간에 있었으나 역시 곧은 성격 때문에 싫어하는 자가 많아다고 한다. 단천, 연안군수로 재직시에는 선정을 베풀어 신망을 얻었다. 1636년인 65살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과 대치하다가 강화도 함락소식을 듣고 종묘사직을 받들기 위해 강화도로 들어간에 형을 찾아가다 도중에 적병을 만나 살해 되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충강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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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명 지정번호 소재지 시대 주요내용
단군신전   삼청리
549-11
1947년 마을 뒤편 솔밭에 1946년 이 마을 한학자 원용선이 세우고 현판을 숭령전(崇靈殿)이라 하여 단군영전을 모셨으며 정면에는 조선개국단 구성묘비라고 새기고 10월 3일 근처 유림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다 1952년 현위치로 이전 1995년 숭령전, 제실증수 하고 2000년 삼문, 홍살문 건립
삼연정   덕련리 360 1890년 철종10년(1895년) 이연음이 서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1930년 제자들이 그 공적을 기리고자 창건하고 그의 호를 따라 삼연정이라 하였으며 1944년, 1967년에 거쳐 보수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