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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육영수여사 생가 복원

충주시홍보대사/김광영 2011. 5. 4. 17:24

 

 

 (故)                                                         육영수여사의 생가 복원                                                

 

아주 어린시절의 희미한 기억으로 옥천 구읍에 큰 고택이 하나 있었다

부자집 담 넘어의 일은 알 수도 없었고 들어 가 본 적은 더욱이 없었다 , 고향에서 흘러다니던 뜬소문으로는 그 부자의 부인이 열이 넘는다는 부풀려진 풍문이 어린 내 기억에도 선명하기만 하다

 

하여간에 그집 사위가 혁명을 일으켜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얼마지나지 않았을 때, 그 부자는 세상을 떴는데  사위 덕에 죽어서까지도 호사를 누렸다, 그 대통령의 치적은 평가하는 이에 따라 다른데, 영부인이셨던 육영수여사의 평판은 세간에 좋게만 기억 되고 있다.

 

그동안 정치적인 부침도 있어서인지 모르지만,돌보지 않아 이 고택은 허물어지고 퇴락하여 폐허처럼 버려졌다가 최근에 복원이 되었다, 그래서 고향에 간김에  돌아 보게 되었는데...하필 월요일은 공개하지 않는 휴일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담밖으로 한바퀴 돌아 보기만 했다

 

<2010.9.13. 옥천>

 

 

 

육여사의 생가 대문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에 있는 충북도 기념물 제 123호다, 복원 된지 얼마 안되어 너무 새 것인 점이 흠이지만, 이제라도  복원되고 보존 되는 것이 다행이 아닌가? 무엇이든 자꾸 사라지고 새로 짓는 것이 아쉬운 세상이다

 

 

이 저택에서 육영수여사는 1925년에 태어나서 1950년 박정희 장군과 결혼할 때까지 살았으며 이 지방에서는 교동집(校洞宅)이라 부리웠던  옥천의 명문가였다 

 

 

이 고택은 1600년 경부터 3정승( 김정승, 송정승,민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지역의 상류주택 양식으로 축조 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여사의 부친 鍾寬씨가 매입하여 개축을 하였다고 한다

 

 

 

개축할 때 건물의 기단을 높이고 각기 독립된 아랫집,큰집,윗집,사당영역으로 구분하여 적절히 배치를 하였다

 

 

세월이 흘러 1969년에 본래의  모습과 달리 현대식 한옥으로 개조하여 사용해 오다가 오랫동안 방치하여 퇴락되었고 마침내 1999년 철거되었다

 

 

2002년 4월에 이 생가터가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면서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과 자문회의와 고증을 거쳐 2010년 5월에 안채와 사랑채, 윗채,아랫채,사당 등 각종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을 완공하였다

 

 

육영수 여사는 영부인으로 어린이를 위한 육영재단과 양지회를 설립하여 자선봉사 활동을 하였으며,대통령의 훌륭한 내조자이며 자애로운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 왔다

건물은 생가의 뒷부분에 위치한 윗채의 당당한 모습이다

 

 

잘 다듬은 화강석으로 쌓은 부자집 저택의 담장이 왕궁의 담장 같이 높고 길어서...당시의 서민들에게는 위화감을 느끼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담 아쪽에는 연못 정원이 배치되어 있다

 

 

담 안으로 보이는 건물은 "연당사랑"으로 그 앞에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이 있다

 

 

1,대문,곳간채,2,창고,3,사랑채,4,중문채,5,연당사랑,6,윗채,7,정자,8,사당,9,안채,10,뒤주,11,연자방아,12,아랫채,13,아래대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