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민 건강의유람터 / 금봉산(충주남산)등산
채 봄이오기전 겨울의문턱 충주남산에 오르다.
깊은 겨울잠을잠에서 깨어나려하는 시절, 충주시민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건강의 유람터
충주남산(금봉산)에 오릅니다.
충주남산등산은 깔닥고개만 지나면 보편적 순탄한 등산길이 이어집니다.
까닥고개에서 에너지를 소비 했다면 다음 정상을 향한길은 지친에너지를 보충하는 코스라고나 할까
등허리를 지나가는 산행길엔 담소등 여의를 찾는 모습들이 눈에 띄니다.
이렇듯 한참을 지나면 약간의 급경사가 있고 그곳을 오르면 충주남산의 가장 최고봉인 정상에 오르게되는데
이곳엔 해발636m 란 정상 표지석이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인사라도 하는듯 우리를 반깁니다.
충주남산에 오르려면 빽빽히 지켜서있는 울창한 남무숲을 지나게 되는되요.
등산로 중간지점엔 깔닥고개 와 충주산성.마즈막재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이라하여 특별한 것은 없지만
어느곳에가던 무엇이던 최고를 추구하고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기븐좋은 것입니다.
드디어 충주남산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에는 보시다 싶히 해발636m라는 표지석과 안내판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산길에 임하게 됩니다.
하산길엔 정상바로 및 좌펴길을 가게 되는데 바로 충주산성이 눈에띕니다.
이제 부터는 하산길 입니다.
남산 산행은 남산아파트 위로 올라 깔닥고개를 넘어 충주산성방향으로 시계반대반향으로 가게 되는되요
남산의 정상 아래로는 몽고군을 물리 첬다는 충주산성이 있고 그아래로 내려가면
서서히 하산길을 임하며 마즈막재쪽으로 하산하게 됩니다.
남산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충주시가지가 멀리 눈에띕니다.
남산에서 바라보는 충주시가지의 모습은 또다른 아늑함을 안겨 줍니다.
역시 남산은 충주시민들에겐 생명줄같은 충주시민과 함께하는 삶 그 자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이성이 충주산성입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이지역을 침략했을시 이곳 남산에 성을쌓고 침략을 막았다는 역사가 깃든 유명한 명소입니다.
본래 이성은 세월의 흔적처럼 흠집이 많았으나
충주시에서 이산성을 잘 정비하여 지금과 같은 깔금한모습의 충주산성으로 태어 났습니다.
충주산성은 충주시 안림동 산56-1과 직동 산 24-1 및 목벌동 산54에 걸쳐 있으며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 지기도 합니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퇴뫼식 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성 재료는 석재를 고루 쌓아 전형적인 고식을 보이며 성 둘레는 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 ~ 8m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지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습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 및 기와쪽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되며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습니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습니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합니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습니다.
충주산성을 지나 하산하려면 멋진 바위가 나타납니다.
마치 어느 명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듯한 이바위는 남산의 또 다른 풍광이며 자랑거리 입니다.
따스한 초봄의 등산로에서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발길이 가볍습니다.
보이는 산성이 바로 충주산성 인데요.
충주산성은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합니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됩니다.
1977년에 무너진 곳의 일부를 보수하였고 1986년도에 지방비 예산을 투입
충주공업전문대학 박물관 팀에 의하여 발굴 조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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